스위스 알프스 2168m 고지 피르스트(First) 전망대에선 케이블카 막차 시간이 오후 5시30분이다. 하이킹에 나선 관광객들은 해가 중천에 떠있어도 산속에서 날밤을 맞지 않으려면 케이블카로 땀을 뻘뻘 흘리며 되돌아가야한다. 관광객 편의보다는 운영원칙과 자연보호를 우선했기에 벌어지는 풍경이다.

인구 800만 스위스는 관광 산업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등생’이다. 만년설이 뒤덮인 산과 빙하가 녹은 옥빛 호수들은 스위스에 내려진 천혜 보고(寶庫)다.

철도와 도로 등 완벽한 사회간접자본 덕에 절경(絶景)까지 접근이 용이하다. 첩첩산중 마을이라도 전력∙교통 시설들이 잘 정비돼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8만4000달러, 세계 2위의 저력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스위스 국민들은 동네 앞산 오르듯 세계 명산(名山)에서 하이킹과 산악 자전거를 즐긴다.

도심을 흐르는 개천도 깊은 바닥이 훤히 보인다. 길을 가다 수시로 만나는 음수대엔 만년설이 녹아 이가 시린 식수가 흐른다. 빙하 폭포가 고봉에서 3~4단 수직낙하하는 장관들이 차창 곳곳마다 목격된다. 기암괴석이 버틴 계곡을 빙하물이 세차게 때린다. 그런데 인적이 한산하다. 한국이었으면 벌써 뽕짝 메들리에 노점상 돗자리가 깔리고 곳곳에 수박이 떠다니고 남았을 조건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물려 받은 축복을 지켜내려는 스위스인의 노력과 생활 습관이다.

유명한 관광지라도 밤 10~11시 이후엔 대부분 상점들에 불이 꺼진다. 큰 도심들은 오후 5~6시면 유령이라도 나올 듯 스산해진다. 그 흔한 24시 편의점 하나 찾을 수 없다.
2000~3000m 고산준봉을 오르내리는 산악 철도들은 모두 전기로 움직인다. 미국 영화사 파라마운트 로고에까지 사용된 명산 마테호른이 있는 체르마트(Zermatt)엔 아예 연료 차량 진입이 금지됐다. 차는 체르마트 인근 마을에 세워두고 전동 열차로 들어가야 한다. 대신 체르마트 거리엔 전기 택시와 버스가 돌아다닌다.

스위스는 1914년 알프스 산맥을 접한 국가 중 최초로 국립공원을 지정했다. 이후 20여개의 국립공원을 운영 중이다. 2008년부턴 수입 화석연료 사용에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 예일∙컬럼비아대가 2년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평가하는 환경성과지수(EPI)에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두고 여론이 뜨겁다. 그만큼 케이블카 운영에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뜻이다. 머리띠를 두르고 설치를 주장하는 주민들과 이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뉴스를 달군다. 스위스에 별 문제 없이 2500여대나 운영되는 케이블카 한대 설치에 나라가 시끄러운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한국도 아름다운 자연을 지녔다. 이를 관광 상품화하는 건 좋은 아이디어다. 하지만 그전에 과연 우리에겐 아름다운 자원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능력이 있는지 짚어야 한다. 저급한 상혼(商魂)과 시민의식에 대한민국 산하가 5년도 못 버틴다면 관광화는 애시당초 하지 않는게 나을 지 모른다.
관광 사업을 본격화할 거라면 천년만년 세계인이 함께 향유해도 자연이 보존될 수 있도록 환경 규제와 의식을 먼저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