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두 개 목표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한국은행에 ‘고용안정’이라는 새로운 책무가 추가될지 관심이 쏠린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정희수 새누리당 의원이 이달 한은 설립 목적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한은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관련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이 모든 정책의 최우선 목표인 상황이다. 한은도 고용안정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한은은 고용을 정책 목표에 추가하는 데 탐탁지 않아 보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브리핑에서 “기존 목표인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 있는데, 고용안정을 추가할 경우 여러가지 목표가 상충할 수 있고, 현재 한은이 보유한 정책수단이 상당히 제한돼 있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과 같이 저물가, 저성장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성장 지표인 고용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물가 상승 부담이 크지 않다. 그러나 정상적인 경제 상황에서는 고용 확충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물가 상승 압력이 발생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한은의 대응이 미국 중앙은행에 비해 너무 미흡했다는 지적이 있어서 한은법에 '금융 안정'이 목표로 추가됐다. 한은의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한다면 그걸로 족하다.

게다가 우리나라 노동시장 구조는 미국과 너무 다르다. 고용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고용 지표를 보면 이런 상황을 읽기 쉽지 않다. 지난 7월 15~64세 고용률은 66.3%로 1982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3%대로 미국이 자연 실업률이라고 보는 5%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매달 취업자 수는 30만~40만명씩 늘어난다.

이는 경기가 나빠지면 주부나 은퇴 장년층 등 저임금 근로자들이 고용시장에 진입하면서 고용 지표는 오히려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이 고용을 줄이고, 경기가 나아지면 고용을 확대하는 유연한 노동시장을 가지고 있다. 고용 지표 개선을 곧 경제 성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고용과 경제가 괴리된 우리 구조에서 한은 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중앙은행의 정책 수단에서도 차이가 있다. 미국은 중앙은행이 은행감독권을 갖고 있어 통화 완화정책의 부작용을 제어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금융감독원이 모델로 삼은 영국의 금융감독청(FSA) 역시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산하로 들어갔다. 반면 한은은 1999년 은행감독원이 독립해 금융감독원으로 출범하며 금융감독 수단이 없다.

'고용 안정'을 한은 정책 목표에 추가하자는 정희수 의원은 이런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