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이스파한. 여행에서 돌아와서 사진 파일을 정리하는 일은 정말 일이다. 파일정리에 대한 나름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 속 편하다.

앞서 연재를 해서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 부부는 지난해 일 년 동안 세계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그 이야기가 곧 책으로 나온다. 우리는 책 제목을 ‘여, 관, 방’이라고 지었는데, 이 이름으로는 검색이 안될 듯하다. 하하)

누구나 그렇듯이 우리도 여행하는 동안 사진을 무진장 많이 찍었다. 문제는 그 사진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사진 정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문제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원본 파일을 보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안에서 내 사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디카로 찍은 사진의 원본 파일을 보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분이 최신 방법을 추천해 주셨다. 바로 인터넷 클라우드 데이터베이스(DB)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클라우드란 큰 인터넷 회사들이 서버 공간을 개인의 저장용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어디서든지 파일을 저장할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문제는 인터넷의 연결 속도. 우리가 여행 중 경험한 인터넷들은 느리기 짝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정말 대단한 인터넷 환경을 가지고 있다. 모든 나라가 한국 같을 것으로 생각했다간 큰일 날 뻔했다.

우리는 매일 촬영한 사진 파일을 휴대용 500기가 외장 하드 두 개에다 두 번 저장했다. 똑같은 파일 더미를 두 개 만든 것이다. 파일 보관은 백업을 만들어 두는 것이 기본이다.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 경우에는 보통 석 달에 외장 하드 하나가 가득 찼다.

그럴 때 두 개의 외장 하드 중 하나를 한국으로 보냈고, 한국에서 처남이 그것을 받아 다시 백업을 만들었다. 백업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외장 하드 하나를 포맷하고 다시 사용했다.

어떤 사진가는 이렇게 만든 두 개의 파일 저장용 외장 하드를 멀리 떨어진 두 곳의 장소에 보관한다. 마치 조선 시대 규장각이 나라 땅 여기저기에 복수로 떨어져 설치돼 있었던 이유와 같다.

미국 모뉴먼트 벨리.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은 휘발성이 더 높다. 먼 훗날 우리는 옛 사진을 다시 찾아볼 수 있을까?

간혹 외장 하드를 여행에 가지고 다니는 거나, 우편으로 부치는 과정에서 문제는 없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일 년 동안 사용해본 바로는, 충격이나 외부 영향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필름을 가지고 다니며 공항의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파일을 잘 관리해야 한다. 외장 하드는 휘발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디롬도 날아가 버린다는데 외장 하드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은 전원을 넣고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외장 하드가 영구적인 보존 매체가 아니라는 데는 모든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한다. 나는 5년, 적어도 10년에 한 번은 기계장치 자체를 새것으로 바꿔줄 계획이다.

여기까지가 말 그대로 ‘보관’에 관한 문제라면, 다음은 그렇게 보관한 원본 파일을 다시 ‘정리’하는 문제가 있다. 쉽게 다시 찾아볼 수 없다면, 보관이 무슨 소용인가? 여러 사진가에게 물어봤지만 대단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분은 없었다. 비슷비슷하게 손가락 품을 팔고 있었다.

일반적인 방법은 날짜별로 쌓아 나가는 것이다. 폴더를 날짜별로 만든다. 일부 사진가들은 파일 이름을 바꿔준다. ‘날짜-장소-주제-일련번호’ 같은 정보가 포함된 제목을 붙여준다. 선택한 파일들의 이름을 일괄수정해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쉽게 바꿀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파일을 하나씩 꺼내 다른 곳에 쓰더라도 이 파일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필요한 수고 하나는 사진으로 된 ‘목차’ 혹은 ‘찾아보기’를 만드는 것이다. 날짜별로 쌓아놓은 사진들에서 샘플을 몇 개씩 골라 모아 놓으면 목차가 된다. 주제별로 분류해 놓을 수도 있다. 후 보정을 해도 파일 제목은 변하지 않으니 원본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끝으로 정말 중요한 것이 남았다. 여행에서 찍어 온 사진 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내어 제대로 된 ‘사진’으로 완성하는 과정이다. 수백 장 혹은 수천 장 쌓듯이 가져온 파일이 전부 ‘사진’일 리는 없다. 그중에서 제대로 된 것들을 고르고 자르고 보정해서 진짜 ‘사진’으로 만드는 것이 찍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니까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