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와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사건 공정위 패소율’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전경련이 27일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공정위의 담합 사건 패소율이 44%에 이른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자, 공정위가 “전경련의 조사 결과는 사실을 왜곡할 소지가 있다”면서 이를 반박하는 자료를 냈다. 전경련이 조사 대상으로 삼은 대법원 판결 사건 표본이 실제 판결이 난 사건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패소율이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게 공정위의 반박 이다.

경제인 단체와 정부 부처가 보도자료를 내며 공개 논쟁을 벌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공격의 포문은 전경련이 열었다. 전경련은 이날 ‘담합 관련 10년간 대법원 판결 분석’이라는 보도자료에서 “ 2006년부터 지난달까지 약 10년간의 공정거래법상 담합 사건 관련 대법원 판결 197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공정거래위원회가 패소한 사건은 87건(패소율 약 44%, 일부패소 포함)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이 같은 공정위의 패소율은 일반적인 행정사건의 정부 기관 패소율(27.7%)보다 높은 수준으로 공정위의 담합 규제제도에 대한 개선 필요성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공정위는 해명자료를 내고 “사실을 왜곡할 소지가 있는 조사”라고 반박했다. 공정위는 “전경련이 전수 조사했다고 하는 197건은 최근 10년 간 선고된 대법원 판결의 일부에 불과하고, 실제 패소율도 44%가 아니라 이보다 훨씬 낮다”고 지적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15년 7월까지 대법원 판결이 이뤄진 담합 사건은 모두 268건이다. 전경련 보도자료에 나온 같은 기간 대법원 판결이 나온 담합사건 통계 154건보다 100건 가량 많은 수준이다. 전경련이 2006년 이후 10년동안 판결이 나왔다고 주장한 사건 197건보다도 많다.

공정위는 “전경련은 법원도서관의 자료를 통해 조사하였다고 했으나, 법원도서관에서는 실제 판결의 일부만을 제공하므로 이를 기초로 통계를 내는 것은 사실을 왜곡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도서관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사건량이 제한돼 있는데 전경련은 이를 감안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조사표본에 문제가 있어 통계 왜곡이 일어났다는 지적이다.

공정위는 전경련이 승소사건과 패소사건을 분류한 기준에도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전경련이 패소로 분류한 사건 중에는 파기 환송심이 아직 끝나지 않아 확정되지 않는 건이 다수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확정판결을 기준으로 할 경우 최근 10년간 담합사건의 패소율은 9.1%(일부패소 포함 시 23.8%)에 불과하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이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고등법원 수준에서 이뤄진 판결에 대한 접근권이 제한된 상황에서 법원 도서관 검색을 통해 부당 공동행위 등에 대한 대법원 판결 기록을 일일이 찾아서 전수 조사를 했다”면서 “대법원에서 공정위 패소로 파기환송된 사건이 고등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가 보유하고 있는 대법원 판결 기록을 근거로 조사한 결과 전경련이 발표한 사건 표본이 실제 대법원 판결이 이뤄진 사건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게 확인됐다”고 다시 반박했다.

공정위는 왜곡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경련이 엉뚱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공정위의 담합사건 판단이 근거가 되는 ▲공정거래법상의 담합추정 규정 삭제 ▲현재 2심제(고등법원, 대법)인 공정위 과징금 처분에 대한 재판 절차를 3심제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로 전환하는 법 개정 등을 주문했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전경련이 주장하는 ‘담합 추정’이 적용되는 사건은 극히 예외적인 몇몇 사건에 불과한 상황이며, 담합사건 재판 절차를 3심제로 하자는 것도 담합사건에 대한 경제분석의 전문성을 인정해 위원회 차원의 행정처분을 1심 재판 효력으로 인정해주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어긋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전경련과 공정위의 다툼을 본 재계는 우려감을 표명했다. 4대그룹 고위 임원은 “공정위를 자극한 전경련의 행동은 재계와는 사전 논의가 없었던 것”이라며 “공정위가 재계 길들이기 차원에서 기업들의 담합 조사를 강하게 실시할 가능성이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