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작가 이불(51)은 오른손에 하얀 붕대를 감고 있었다. 한 달째랬다. "근육 사이에 염증이 생겼대요. 한 자세를 지속적으로 하는 운동선수한테나 나타나는 증세라는데 30년 가까이 작업한 '훈장'인지…."

몸이 고장 날 법도 하다. 1987년 데뷔해 세계를 무대로 쉼 없이 달려왔고, 최근 몇 년간은 '가속 질주 구간'이었다. 2012년 도쿄 모리미술관, 2013년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MUDAM),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에 이어 10월엔 파리 팔레 드 도쿄, 내년엔 시드니 비엔날레에 초대됐다. 그가 9월 25일까지 서울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아담한 개인전을 연다.

거울에 LED와 여러 줄의 금속 체인을 달아 만든‘인피니티’시리즈 안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불. 그는“거울은 나를 대면하는 도구이자 내가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고 했다.

근래 대형 전시장을 가득 채운 이불의 대규모 작품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첫 반응이 '애걔!'일지도 모르겠다. 작은 공간, 작품 판매를 전제로 하는 화랑 전시이다 보니 작품 규모가 일단 작기 때문이다. 작은 샹들리에 형태 설치 작품('인피니티' 시리즈)이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보여준 작품의 일부를 뗀 듯한 거울 파편 조각품('태양의 도시' 시리즈)이 그렇다.

그러나 작품 안을 들여보는 순간 '이래서 이불!' 싶다. 겉에서 보면 식탁 펜던트 조명같이 작은데 아래서 보면 반전이 펼쳐진다. LED 조명을 박아넣은 거울 뒤로 무한대로 이미지가 복제되며 끝을 알 수 없는 공간이 보인다. 작지만 극적이다. "대형 작품이 시(詩)라면 작은 작품은 '시의 제목'입니다. 큰 작품은 관객이 경험할 시간이 많으니 은유적으로 만들지만 작은 작품은 감각에 기댈 물리적 시간이 적기 때문에 '시 제목'처럼 더 응축하고 명료하게 만듭니다."

구슬, 메탈 장식, 전선 장식이 곁들여져 있지만 핵심은 '거울'이다. "거울은 우리의 시각을 교란하기도 하지만 자신과 대면하는 도구입니다. 자기 목소리는 귀로 들을 수 있지만 자기 모습은 시각적으로 반사(리플렉션)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소재이기도 하고요."

거울로 대변되는 '자의식'은 10대 때부터 이불이 움켜쥔 고민이자, 예술의 원동력이다. 이불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16세에 '독재 치하의 고국을 구하겠다'고 한국으로 밀항한 재일교포 출신이다. 아버지는 함께 사회운동을 했던 동지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는 시국 사범으로 수감됐고, 아버지는 도망자 신세가 됐다. 갑자기 소녀 가장이 됐다. "이름은 이불(李�·본명이다), 손은 왼손잡이, 거기다 여자, 부모는 집에 없었어요. 경찰은 수시로 집에 드나들죠. 10대 초반 꼬마가 자아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딱 민중미술 해야 할 배경'이란 사람도 있었지만 이불은 달랐다. "극한의 상황에 들어서면 되레 삶과 대면해 보고픈 의지가 생깁니다. 자기방어적 낙천성이라고 해야 할지. 이런 경험 탓에 인간사를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어요." 보는 각도를 1도만 달리해도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지는 거울 조각은 이런 삶의 투영이다. 작가는 "근대화의 모순을 드라마틱하게 겪으면서 생긴 내 인식의 지형 구조와 흡사하다"고 했다.

그의 작품이 난해하다는 평에 대해 이불은 항변했다. "음악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일단 듣지요. 그런데 미술은 '비주얼(시각)'이란 미술의 언어로 그냥 느끼려 하지 않고 머리로 느끼려 해요. 미술 앞에서만 학구적으로 변하는 건 우습지 않나요."

초창기 누드로 밧줄에 거꾸로 매달리거나('낙태') 괴물 같은 옷차림으로 도쿄 시내를 활보했던('수난유감') 퍼포먼스를 했던 때에 비해 이불의 작업은 철학적이고 사색적으로 바뀌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여전사'란 수식이 따른다. 이불은 "작가가 별명 붙여 부르는 연예인도 아니고, 30년 동안 내가 전사일 수도 없다. 이미 내 세대에 저항하는 세대가 등장했다. 이제 '전사'라는 수식어는 그 세대에 넘겨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