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지도 읽기-양성지도>]

양성 위치. 네이버 지도 참조

지도는 지역을 담는다. 양성 옛지도를 보면 풍수적 사고가 깊게 배어 있다. 향교, 관아, 사찰, 서원이 모두 명당처럼 그려져 있다. 양성을 답사하는 동안 주변의 산줄기가 안온한 느낌을 준다는 생각을 하였다.

양성향교

안성시에 포함된 옛 고을인 양성에서 옛 관아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도 남아 있는 옛 건물인 양성향교를 먼저 찾았다. 옛지도에는 없는 작은 하천을 따라 향교를 찾아간다.
향교를 찾았는데 현대식 건물인 양성향교 명륜문화센터가 먼저 나온다. 이게 향교는 아닐테니 건물 뒤쪽으로 가보았다.

오래된 느티나무와 홍살문이 나온다. 향교 입구부터 마음에 든다. 홍살문 밖의 느티나무도 멋있지만, 향교 안의 은행나무도 400년이 넘었다. 나무가 이 향교의 역사를 말해준다. 중종 25년(1530) 이전에 양성 향교가 세워졌다.

옛지도에 그려진 향교 위치는 정말 명당처럼 보인다. 향교에서 주변의 산줄기를 둘러보았다. 가까이에서도 멀리에서도 산줄기가 둘러싸고 있었다. 참 좋은 느낌이다.

양성면사무소의 비석들

옛 관아의 흔적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양성현이 안성시에 포함되고 옛 군현명인 양성은 양성면으로 바뀌었다. 이럴 때는 우선 면사무소로 가 보는 것이 좋다. 면사무소 앞 길이 T 자 형태이다. 이 길을 따라 오래된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옛 흔적은 남아 있는가? 면사무소 입구 왼쪽 소나무 사이에 비석들이 보인다. 양성현감들의 선정비와 영세불망비들이다. 그래, 양성현이 있긴 있었구나. 양성향교와 이 비석 몇 개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이전에는 독립된 군현이었던 양성현의 존재를 말해 준다.

321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한다. 옛지도에 등장하는 서원, 덕봉서원을 만났다. 숙종 때의 문신인 오두인(吳斗寅, 1624-1689)을 기리기 위해 숙종 21년(1695)에 건립한 서원이다.

주변에는 논이 펼쳐져 있고 저 멀리 낮은 산줄기들이 펼쳐져 있다. 이 서원의 백미는 뒷산이다. 과히 덕봉(德峯)이라 부를 만하다. 서원 중에 이렇게 뒷산이 예쁜 산은 처음 본다. 아주 유명한 서원은 아니지만, 산을 보기 위해라도 가 볼 것을 권한다.

덕봉서원에서 321번 도로를 따라 가다 오른쪽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가면 마을이 나오고 오래된 집들이 보인다. 옛 양성현이지만 지금은 안성선비마을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새로 말끔히 지은 기와집이 보인다. 정무공파재실이라 불리는 곳이다. 주차장도 있고 여러 현대식 한옥이 보인다.

이곳 맞은편이 ‘안성 정무공 오정방 고택’이라 불리는 곳이다. 덕봉서원이 오두인을 배향한 곳이었는데 오두인은 해주 오씨이다. 중종 5년(1510)에 처음 건립되어 오정방, 오사겸, 오숙, 오두인 등이 배출된 곳이라고 전한다. 덕봉리에 있던 것은 효종 1년(1650)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안성에 남아 있는 양반 살림집이다.

옛지도에 덕봉서원 왼쪽에 고성산(高城山), 무한성(武捍城), 백운산(白雲山)이 그려져 있다. 읍치(邑治)와 덕봉서원 뒤쪽 산줄기가 안온해 보인다면 이곳은 좀 험준하게 그려져 있다. 무한성 아래에 운수암(雲峀菴)이 보인다. 안성 관광 안내도에도 이 절이 나온다. 가보기로 한다. 좁은 산길에 경사까지 심해 겨우 도착했다.

절 입구 오른쪽, 산으로 난 길에 무한성(無限城) 안내문이 보인다. 옛지도에는 무한성(武捍城)으로 표기했지만 동국여지승람에는 ‘ 무한성(無限城) : 현 남쪽 12리 지점에 있는데, 석축이다. 둘레는 1천 3백 5척이며, 성 안에 못 하나가 있다.’, 동국여지비고에는 ‘백운산고성(白雲山古城)’으로 기록된 곳이다. 답사해 보면 과연 옛 산성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운수암 비로전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운수암(雲峀菴)의 지금 현판은 운수암(雲水菴)이었다. 대웅전은 1986년에 새로 지었다. 대웅전보다는 아담한 비로전과 그 안에 모셔진 고려시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더 멋있어 보였다.

미리내 성지

운수암에서 내려와 안성 관광안내도를 살펴보았다. 양성면의 북쪽 끝에 미리내 성지가 보인다. 항상 절에만 다닐 수 없지 않은가. 이곳은 19세기 천주교 박해 때 숨어든 카톨릭 교우들이 마을을 형성한 곳이다.

미래내는 지명이 아니라 이곳의 밤이 마치 은하수처럼 보인다고 해서 미리내 성지라 이름붙인 곳이다.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이곳에 있다. 일상에 지친 영혼들은 이곳에 와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