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족쇄를 끊고 날아오를 것인가, 비상(飛上)을 잠시 미루고 주저앉을 것인가?

전 세계 드론(Drone·무인기) 산업계의 시선이 미국 연방항공청(FAA)에 쏠리고 있다. 물류·유통 분야를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서 엄청난 혁신을 촉발할 신기술로 떠오른 드론이 미국 상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을지가 오는 9월 30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여기 주문하신 신발 왔습니다." 신발회사 크록스재팬이 올 3월 선보인 ‘나는 신발가게’에서 드론이 신발 한 켤레를 배달하고 있다. 일본 도쿄에서 나흘간 시범 운영한 이 가게에선 고객들이 아이패드로 주문을 하면 고객이 있는 곳까지 신발을 갖다줬다. 드론 택배가 우편배달처럼 흔해질 날도 눈앞에 다가왔다.

2012년 미국 의회는 드론의 비행을 사실상 합법화하면서 '2015년 9월까지 미 영공을 드론에 개방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들이 필요한 모든 준비를 끝내라'고 지시했다. 의회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FAA는 그동안 드론 기술의 진보 상황을 검토하면서 상업용 드론이 불러올 혁신과 안전·사생활 위협이라는 상반되는 이해를 조화시킬 새로운 규제안을 고심해왔다. 그 결과물이 빠르면 이날 공개되는 것이다.

신기술이 부상할 때면 늘 '혁신 대 규제' 논란이 빚어졌지만, 드론처럼 논란이 뜨거웠던 사례는 근래에 없었다. '군사용 무기 아니면 고급 장난감'이었던 드론이 물류·유통을 비롯한 각 분야 혁신의 새로운 동력으로 떠오른 것은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의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조스의 영향이 가장 컸다. 2013년 베조스는 물류센터 반경 16㎞ 이내의 고객은 트럭이 아닌 드론으로 30분 내에 물건을 배송한다는 '프라임 에어' 서비스 구상을 발표했다. 주문을 마친 뒤에 커피 한잔하고 있으면 물건이 배달돼 온다는 얘기였다. 그는 "향후 5년 안에 드론 택배 비율을 86%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야심 찬 비전을 밝혔다.

사람들은 드론이 '웅' 소리와 함께 벌떼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며 분주하게 택배 상자를 나르는 풍경을 떠올리며 거대한 변화를 상상했다. 베조스의 구상은 '나우 이코노미(Now Economy·현재 경제)'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당일 배송 정도가 아닌 주문과 거의 동시에 물건을 받아보는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야심 찬 발표에도 불구하고 '나우 이코노미'는 이륙하지 못했다. 하늘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간 항공기와 드론의 충돌 가능성, 인구 밀집 지역에 추락할 위험, 사생활 침해와 감시라는 이슈가 미해결 상태였던 것이다. 미국의 경우 현재 일몰 이후 및 고도 500피트(152m) 이상의 비행을 금지하고 있다. 또 반드시 조종사가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범위에서만 운행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드론을 통한 장거리 배송 등 상업적 사용 자체가 불가능한 처지다.

아마존의 30분 배송 서비스인 ‘프라임 에어’용 드론이 택배 상자를 품고 이륙하고 있다.
남아공의 드론 제작사 스테디드론이 만든 제품이 체코 서부의 공업도시 플젠의 교외를 날고 있다.

드론 산업은 '상업 비행 금지'라는 규제 속에서도 진보를 거듭해왔다. 아마존에 자극을 받은 글로벌 기업들이 잇따라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이들의 투자와 기술 발전이라는 동력에 의해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생겨났다. 드론이 불러올 혁신이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물류 측면에서는 궁극적으로 모든 가정이 공항을 갖추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있는 주문형 경제가 날개를 달게 되는 것이다. 물류 비용 면에서도 트럭을 이용한 기존 운송 방식의 10% 정도로 저렴하다.

상업용 분야 말고도 드론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산간 오지나 재난구역에 의료품이나 구호물품을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고, 산불·빙하·교통 감시 시스템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미국의 프로풋볼 팀들은 드론으로 훈련 장면을 찍어 효과적인 팀 전술을 짜는 방안을 시도한다. 거대한 목초지에서 양떼나 소떼를 관리하는 목동의 역할을 드론이 대신하는 사례도 나오는 중이다. 인간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효율을 높이는 혁신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구글은 '프로젝트 윙'이라는 무인 택배 시스템을 호주에서 시험 중이다. 페이스북은 전 세계 어디서든 10기가비트(Gbps)급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인터넷 드론'을 지난달 완성했다. 태양광 에너지로 최장 3개월간 비행할 수 있는 드론을 하늘에 띄워 아직 인터넷을 경험하지 못한 세계 인구 10%에게 무선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규제의 물꼬만 터지면 새로운 혁신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기반은 마련된 상태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미 연방항공청의 결정을 앞두고, 아마존은 지난달 '하늘길 분할 방안'을 제시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내놓은 이 방안의 핵심은 상업용 드론이 다니는 길을 따로 두자는 것이다. 지상 200~400피트(61~122m)는 고속·고성능의 상업용 드론을 위한 '고속 트래픽 구역'으로, 그 아래는 일반 소비자용과 영상 촬영 같은 드론을 위한 '저속 트래픽 구역'으로 나누자는 것이다.

고도 500피트(152m) 이상은 유인 항공기만 다닐 수 있게 하되, 안전을 위해 그 아래 100피트 구간은 어떤 형태의 비행도 금지되는 완충 지역으로 삼자는 안이다. 상업용 드론이 날아다닐 고속 트래픽 구역은 GPS(위치정보시스템)와 충돌방지장치 등 안전 시스템을 갖춘 드론만 진입 가능하고, 중앙관제식 트래픽 시스템에 따라 안정적으로 움직이게 하자는 게 아마존의 아이디어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 100여개 기업은 이 제안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미국이 규제 논쟁이 한창인 와중에, 유럽과 중국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영국은 강력한 규제에 막혀 시험비행도 마음대로 못하는 미국 드론 기업들을 유혹하고 있다. 미국에선 실내 비행밖에 못했던 아마존의 드론도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독일의 글로벌 운송기업 DHL은 파셀콥터라는 배송용 드론으로 독일 북부의 항구에서 12㎞ 떨어진 북해의 섬에 의약품 소포를 배달하는 데 성공했다.

'유럽의 지붕' 알프스를 이고 사는 스위스에서는 우체국이 지난달 드론을 이용한 우편배달을 시험했다. 곧 실제 우편배달에도 드론을 도입할 예정이다. 중국도 알리바바가 올 2월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드론을 이용한 택배 서비스를 선보였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는 지난 16일(현지 시각) 영국 텔레그래프와 인터뷰에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아마존의 배송 드론은 영국에서 먼저 출현할 것"이라고 말하며, 미국 정부를 은근히 압박했다. "(아마존의 드론 배송이) 마치 우편 트럭처럼 흔한 풍경이 되는 날이 올 겁니다. 몇 달 뒤 일은 아니겠지만 반드시 그날이 옵니다." 한 달 뒤면 그의 말이 얼마나 빨리 실현될지가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