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정보기술) 업계를 주름잡는 중국·일본·미국의 대표 CEO(최고경영자)들이 줄줄이 시련을 겪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그룹을 창업한 마윈(馬雲·51) 회장은 최근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알리바바는 작년 9월 미국 뉴욕증시 상장 때만 해도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공모가가 1주당 68달러였던 주식은 한때 12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다.

하지만 최근 부진한 실적 때문에 주가는 74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알리바바는 올 2분기에 전년보다 28% 증가한 202억4500만위안(약 3조7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51억6100만위안(약 95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감소했다. 시장 예상치를 훨씬 밑도는 실적(어닝쇼크)이었다. 2분기 실적이 발표되자 주가가 급락하면서 마윈 회장은 하루 만에 주식가치로 7억5200만달러(약 8900억원)를 날리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은 알리바바가 중국의 경쟁업체인 JD닷컴에 비해 모바일 전환이 늦었다는 점을 이유로 거론하고 있다. 현재 알리바바는 거래액의 55%가 모바일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윈 회장은 투자자들을 달래기 위해 "앞으로 2년간 40억달러(약 4조73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이겠다"는 주가 부양(浮揚) 대책을 내놓았다.

최근 중국 톈진(天津)항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도 마 회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마 회장에게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중국에 환원하라"며 기부를 압박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마 회장이 최근 홍콩에서 15억홍콩달러(약 2290억원)짜리 초호화 주택을 구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거세졌다.

(왼쪽부터) 손정의. 마윈. 베조스.

일본 소프트뱅크의 창업자인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58) 회장도 최근 심기가 편하지 않다. 2013년 인수한 미국 이동통신사 '스프린트' 때문이다. 업계 3위(가입자 기준)였던 스프린트는 올 2분기에 'T모바일'에 밀려 4위로 주저앉았다.

T모바일은 원래 손 회장이 스프린트에 이어 인수합병(M&A)하려고 했던 회사다. 두 회사를 합쳐 미국 통신업계에서 버라이즌, AT&T와 대항할 '제3의 기업'을 만들려고 했지만 미국 당국의 규제로 결국 무산됐다. T모바일 인수에 주력하던 스프린트는 결국 시장 경쟁력을 키우지 못했고 급기야는 인수 대상에 추월당하는 굴욕까지 맛보게 된 것이다. 올 2분기 스프린트가 가입자 67만5000명을 늘릴 때 T모바일은 200만명 이상의 순증(純增)을 기록하며 시장을 뒤흔들었다.

손 회장이 인수한 이후 한때 주당 가격이 10달러를 넘어섰던 스프린트의 주가는 현재 4.9달러 안팎으로 반 토막이 났다. 220억달러에 스프린트를 인수한 소프트뱅크의 투자 손실 평가액도 100억달러가 넘는다.

스프린트가 흔들리면서 소프트뱅크의 주가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일본 NTT도코모와 KDDI 등 경쟁 통신사들의 주가는 최근 6개월간 20~30%씩 상승했지만 소프트뱅크만 제자리걸음이다. '투자의 귀재'로 불렸던 손 회장에게는 굴욕의 성적표인 셈이다.

손 회장은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수개월째 최고 수준의 통신 엔지니어 100명과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스프린트 재건을 위한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우선 운영비와 설비 투자를 삭감하는 동시에 차세대 네트워크를 준비하면서 재건(再建)을 노리고 있다. 그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고 저 끝에 불빛이 보인다"며 실적 개선을 자신하고 있다.

최근 포브스의 '세계 IT 100대 부자' 3위에 오른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Bezos·51)도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전·현직 임직원 100여명을 인터뷰해 아마존의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문화를 집중 보도한 뒤 비판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정이 넘은 시각에 상사가 이메일을 보내고 곧바로 회신이 없으면 문자메시지를 보내 이유를 캐물을 만큼 혹독하게 직원들을 쥐어짠다는 것이다. 회의가 끝나면 책상에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는 직원들이 숱하고, 쌍둥이를 임신했다가 유산한 여직원이 바로 다음 날 출장을 가야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제이슨 머코스키는 본지 인터뷰에서 "회사 안은 정글이고 '모가지 없는 닭들(headless chicken·정신없이 바쁜 것을 나타내는 말)' 천지다. 매 순간 패닉이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돌아가고 거의 매일 다른 요구를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제프 베조스는 "내가 아는 아마존이 아니다"면서 "그런 기업이 경쟁이 극심한 기술시장에서 살아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해명에 나섰다.

아마존을 창업하고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기업가 제프 베조스는 애플 공동 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실제로 친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미친 듯이 매달리는 열정이 공통점으로 꼽힌다. 이 같은 성격이 임직원들을 '무자비한 생존경쟁'으로 내모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