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수많은 앱(응용 프로그램)과 사진으로 꽉 찼을 때 손톱만 한 크기의 추가 메모리를 꽂기도 하고, 노트북에 데이터 저장용으로 하드디스크 대신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라는 장치를 쓰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제품에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 '낸드플래시'라는 메모리 반도체가 사용된다.

지금까지 반도체 업계의 기술 경쟁은 '미세화(微細化) 공정'에 집중됐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본 단위인 셀(cell)을 한정된 면적에 최대한 촘촘하게 밀집시키는 것이 기술력이었다. 보통 20나노, 10나노급 반도체라고 표현하는 것은 각 셀 간의 간격을 뜻한다. 1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는 머리카락 굵기의 5만분의 1 수준이다. 즉 10나노 반도체는 1억분의 1미터 간격을 사이에 두고 셀이 배열된 반도체다. 이처럼 간격을 좁히는 기술은 물리적인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저장 공간끼리 간섭 현상이 심해져 데이터를 판독하지 못하는 등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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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 'V(Vertical·수직) 낸드 반도체' 구조다. 저장 공간을 단층주택처럼 수평(水平)으로 촘촘하게 배치하는 기존 방식 대신 아파트처럼 수직(垂直)으로 층층이 쌓아 올리는 '발상의 전환'을 꾀한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가 유일하게 수직 구조의 낸드플래시를 양산(量産)하고 있다. 2013년 24단으로 쌓아올린 1세대 제품을 내놨고 작년에는 32단(2세대), 최근에는 3세대인 48단 반도체 양산에 성공했다.

3세대 V낸드 제품은 기존 20나노급의 평면 낸드 반도체에 비해 저장 공간 집적도가 3배, 속도 및 내구성은 각각 2배 향상됐다고 삼성은 밝혔다. 소비전력도 기존의 35% 수준이다. 전기를 덜 쓰면서도 성능은 훨씬 뛰어난 것이다.

아파트처럼 층층이 쌓는 핵심 기술 중 하나는 '구멍 뚫기'다. 먼저 시루떡을 쌓듯이 반도체 원재료를 48단으로 쌓은 뒤 약 18억 개의 구멍을 수직으로 뚫는다. 여기에 반도체 특성을 내는 물질을 채워넣어 전자(電子)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만든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48층 건물의 옥상부터 바닥까지 수십억 개의 구멍을 한 번에 뚫고, 구멍마다 전자(데이터)를 이동시킬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기술로 비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각 단에 위치한 '컨트롤게이트'가 필요에 따라 마치 자석처럼 전자를 끌어당긴다. 전자의 유무에 따라 '0'과 '1'로 구분해 디지털 데이터를 기록한다.

삼성전자는 작년 10월 수직 적층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저장 공간 하나에 저장되는 데이터 수를 기존 2개에서 3개로 늘리는 '3비트' 기술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층수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각 방(저장 공간)의 효율도 높인 셈이다. 이렇게 개발된 V낸드 반도체는 현재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활용한 저장장치인 SSD에 탑재된다. 고성능·저전력을 요구하는 데이터센터에도 공급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48단까지 쌓았지만 향후 1000단 이상도 쌓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32기가바이트(GB)인 칩 하나의 용량도 업계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1테라바이트(TB)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낸드 플래시(Nand Flash) 반도체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계속 저장되는 메모리 반도체로 컴퓨터·스마트폰 등에 폭넓게 쓰인다. 다른 메모리 반도체인 D램은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도 함께 지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