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후반 미국 석유업체인 엑손모빌은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보르네오섬 인근 마카사르 해협의 심해 시추권을 헐값에 사들였다. 다른 석유회사들은 '석유가 나올 수 없는 지형'이라며 의아해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 엑손모빌은 이 지역에서 하루 2만 배럴의 석유를 뽑아내고 있다. 엑손모빌의 판단 근거는 수학(數學)이었다. 이들은 주변 지형 암석의 나이, 압력, 온도, 밀도를 미분방정식과 확률 등 수학으로 분석해 이 지역에 석유가 묻혀 있을 것으로 확신했던 것이다.

#. 미국 통신기업들은 2000년대 초반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인터넷 보급을 위해 전국적으로 깔려 있는 구리선을 모두 광(光)통신망으로 대체하는 데 막대한 비용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광통신망 설치 중에 새로운 기술이 개발된다면, 비용과 시간 낭비가 불가피했다. 통신회사 알카텔루슨트 산하 벨연구소는 기초수학인 행렬(行列)을 이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각 가정의 구리선을 행렬의 구성요소로 보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나눠주는 방식을 계산해냈다. 그를 통해 알카텔루슨트는 구리선으로 초고속인터넷급의 통신속도를 구현할 수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과 수십조원의 비용을 아낀 것이다.

위 사례들은 새로운 투자 없이 수학자들의 머리로 만들어낸 성과다. 이처럼 수학으로 기존 산업에서 전혀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는 학문분야를 '산업수학'이라고 한다. 국내에도 산업수학을 본격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미래창조과학부는 17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대학 수학과 교수들이 기업의 문제풀이에 동참하는 '산업수학 문제헌터' 발대식을 개최했다.

산업수학 문제헌터로는 성균관대·이화여대·가톨릭대·건국대 등 21개 대학, 100여 명의 수학자들이 나섰다. 이들은 자문을 의뢰해온 34개 기업과 함께 각종 수학적 문제풀이에 참여한다.

성균관대는 삼성SDS, KT와 함께 빅데이터의 분류 방법 개발에 나서고, 부산대는 삼성중공업의 해양 플랜트 구조를 사전에 점검할 수 있는 해양플랜트 시뮬레이션 모델을 개발한다. 건국대는 바이오업체 파미셀의 줄기세포 분화연구와 의료영상 데이터 분석에 적용할 수 있는 수학 수식을 만들 계획이다.

미래부가 수학자들을 기업과 연결시킨 것은 국내 기업들이 산업수학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석준 미래부 1차관은 "미국의 경우 산업수학 전문가가 1만4000여 명으로 사실상 모든 기업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한국은 산업수학 전공자가 520여 명에 불과하고 기업에는 거의 없다"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산업수학을 이용,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19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산업수학은 이미 선진국에서는 기업의 경쟁력으로 여겨진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대한수학회 부회장)는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구매자들을 수학적으로 분석, 이들이 미래에 살 제품까지 높은 확률로 분석해낸다"면서 "각 사람마다 초기화면에 보여주는 제품이 달라지는 것도 모두 수학적 계산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산업수학을 이용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2013년 수학자들이 창업한 벤처기업 인코어드테크놀로지는 수학을 적용한 에너지 절감 기술을 구현했다. 이 회사의 계측기를 전기계량기에 장착하면, 전기기기별로 전력 사용량을 파악한 뒤 절감 방법까지 알려준다. 최근 조지소로스 펀드가 투자를 제안하기도 했다. 박형주 교수는 "한국에서 수학은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산업수학이 자리 잡으면 사람들의 시선도 변할 것"이라며 "미국의 경우 산업수학 전공자의 연봉이 대학교수보다 두 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