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나 공인인증서 없이도 스마트폰·PC 등에서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대금이 결제되는 간편결제 서비스가 속속 출시되고 있다. 다음카카오의 '카카오페이', SK플래닛의 '시럽페이', 네이버의 '네이버페이', 이베이코리아의 '스마일페이', LG유플러스의 '페이나우'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500만명이 회원 가입한 카카오페이는 온라인 쇼핑몰 '옥션' '지마켓' '11번가' 등에서는 쓸 수 없다. 옥션·지마켓에서는 스마일페이, 11번가에서는 시럽페이라는 해당 회사의 간편결제 서비스만 사용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다음카카오의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도 스마일페이나 시럽페이는 쓰지 못하고 카카오페이만 써야 한다. 서로 자신들의 사업 영역 안에서 '성벽'을 쌓고 다른 회사 서비스를 아예 쓸 수 없도록 막아놓은 것이다. 소비자들은 "간편결제라고 다들 홍보하더니 저마다 전용 서비스만 쓰도록 해놓아서 실제로는 '칸막이 결제'"라고 비판하고 있다.

간편하지 않은 간편결제

오프라인 매장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달 15일 시범 서비스에 들어간 삼성전자의 간편결제 서비스 '삼성페이'는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스타벅스 등 신세계그룹 계열 매장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삼성페이의 가장 큰 장점은 오프라인 매장에 설치된 일반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에서 모두 쓸 수 있다는 것인데, 정작 매장에서는 이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신세계 관계자는 "삼성페이를 아예 차단한 것은 아니고 현재 제휴 협상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세계가 지난달 23일 출시한 'SSG페이'는 신세계 관련 매장에서는 모두 쓸 수 있다. 유통업계 강자인 롯데그룹 역시 롯데백화점·롯데마트 등 자사 매장에서만 사용 가능한 '엘페이(가칭)'를 연내에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업체들의 행보는 전형적인 '님비(Not In My Back Yard) 현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님비란 본래 유해 시설을 내 뒷마당에 설치해선 안 된다는 지역 이기주의를 표현하는 말이지만, 외부 서비스 도입을 막는 '사업 이기주의'를 뜻하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칸막이를 쳐놓은 상태이다 보니 각 간편결제 서비스의 제휴처는 많지 않다. 카카오페이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선물하기 서비스나 음식 배달 서비스 '배달의 민족' 등 200여개 가맹점에서만 쓸 수 있다. 시럽페이는 온라인·모바일 전자상거래 서비스인 11번가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또 네이버페이는 5만6000여개 가맹점을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네이버와 제휴를 맺고 있는 중소 쇼핑몰이 대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간편결제가 오히려 더 불편해지고 있다. 3~4개 이상의 간편결제 앱(응용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각각 신용카드 정보를 일일이 등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카오톡에서 선물하기를 하려면 카카오페이를, 이마트에서 장을 보려면 SSG페이도 따로 깔아야 하는 것이다. 직장인 김모(33)씨는 "간편결제 앱을 깔아서 몇 번 써봤지만 정작 못 쓰는 곳도 많고, 새로운 서비스를 설치하라는 곳도 많아서 오히려 더 불편하더라"고 말했다.

중국에선 알리페이 하나면 끝

해외는 다르다. 중국에서는 알리바바의 '알리페이'와 텐센트의 '텐페이' 정도만 있으면 어디서든 간편결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온·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백화점·쇼핑몰·대형 마트 등과 폭넓게 제휴가 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롯데백화점에서도 알리페이를 쓸 수 있을 정도다.

미국 역시 애플의 애플페이나 페이팔 정도만 있으면 서비스 이용에 불편함이 없다. 애플페이는 아이폰을 결제단말기에 갖다대기만 하면 결제가 이뤄진다. 맥도널드·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 음식점부터 미국 최대의 약국 체인 월그린 등 미국 내에서만 100만여개에 달하는 가맹점을 확보한 상태다.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경영학)는 "모든 플랫폼을 아우를 수 있어야 진정한 간편결제 서비스"라며 "지금처럼 각자 자신들의 사업 영역 안으로만 칸막이를 치고 있으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서비스가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