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열연공장에서 1250도로 달궈진 철 덩어리가 압연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곳에서만 연간 550만톤의 철제가 나온다.

“윙~ 쿵쾅쿵쾅. 칙칙칙.”

지난달 31일, 충청남도 당진 현대제철 열연공장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불가마 안에 들어온 듯 피부가 화끈거렸다. 마침 벌겋게 달아오른 철 덩어리가 6000톤의 압력으로 누르는 롤러를 지나고 있었다. 한뼘 두께의 철 덩어리는 같은 과정을 7번 정도 거친 후, 1mm 정도의 얇은 철판으로 재탄생했다.

이승희 현대제철 차장은 “이 곳(열연공장)에서만 연간 차 550만대가 만들어지는 분량의 자동차 외장제 강판을 생산해낸다”며 “강판 사용 부위에 따라 압력, 냉각하는 속도 등을 다르게 해 두께와 강도가 서로 다른 철제를 생산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제철은 현대하이스코를 흡수합병하면서 철제 제품 생산부터 가공, 영업망까지 갖춘 글로벌 일관제철소로 재탄생했다. 현대제철의 모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2000년대 중반부터 꿈꿔온 ‘차와 철강을 하나로 묶는 일관 제철의 꿈’이 10년 만에 실현된 것이다. 철제에서 차량용 부품 소재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히게 된 현대제철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현대제철이 제네시스 외판재를 살펴보고 있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車 종합 소재 생산 ‘메카’로 떠오른 현대제철

서울 양재동에서 자동차로 1시간 20분 정도 달려 도착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는 여의도 3배 크기의 공간에 수많은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철광석 등을 실은 트럭은 수시로 공장을 들락날락거렸다. 그 중 당진제철소 입구 오른쪽에 공사가 진행 중인 한 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엔진, 변속기 등 차량 내장 부품에 이용되는 소재를 만드는 특수강 공장이었다.

이승희 차장은 “특수강공장이 올해 11월 완공되면 현대제철은 차량의 내외장 부품을 종합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구조로 거듭나게 된다”며 “현재 약 90% 정도 지어진 상태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제철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당진 특수강공장에서 생산한 특수강 소재를 올해 초 인수한 현대종합특수강(구 동부특수강)을 통해 2차 가공을한 뒤, 볼트와 너트 생산 업체를 통해 3차 가공 후 현대·기아차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 차장은 “엔진, 변속기 등 자동차 내부 소재에 쓰이는 특수강을 생산하면 연구개발부터 생산까지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구매사의 요구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제철 철강제 제품 및 사용 용도.

◆ 찌그러지지 않는 국산차... 현대제철이 개발한 ‘초고장력 강판’ 덕분

연구소로 이동하자 뼈대만 드러낸 자동차 모형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가 실시한 안전도 평가에서 모든 항목(29개) 100점을 받은 현대차의 신형 제네시스였다.

구남훈 현대제철 기술연구소 선행연구팀 팀장은 “현대제철이 개발한 ‘초고장력 강판’이 50% 이상 들어간 덕분에 신형 제네시스는 왠만한 충격에도 운전석이 찌그러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신형 제네시스 모델의 철근 뼈대 모습. 빨간 부분이 현대제철이 개발한 초고장력 강판이다. 초고장력 강판은 1㎟ 굵기의 철사에 150㎏ 이상의 물건을 매달아도 끊어지지 않는 강도를 갖고 있는 철제를 말한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출시되는 신차에도 현대제철의 초고장력 강판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신형 제네시스 뿐만 아니라 쏘나타, 기아차 신형 카니발, 쏘렌토 등에도 초고장력 강판 사용 비율을 기존 20%에서 약 50% 이상으로 늘렸다.

현대제철은 강도는 높이면서도 접합 부문에서 무게를 줄이는 핫 스탬핑(Hot Stamping) 공법도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핫 스탬핑 공법은 9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한 소재를 프레스 성형과 동시에 급속 냉각시킴으로써 성형 전에 비해 강도가 3배 이상 높은 초고장력 강판을 제조하는 방법을 말한다. 최근 제네시스를 비롯해, 쏘나타, 카니발, 쏘렌토 등 현대기아차의 최근 신차들에 확대 적용되고 있다.

◆”車강판, 가벼운 것만이 답은 아니다”…강도·경제성 동시에 노리는 신소재 개발

최근 자동차 부품 개발의 트렌드가 ‘경량화’지만, 현대제철은 이마저도 어느 순간 한계가 올 것이라는 입장이다.

구남훈 팀장은 “자동차 강판의 경우, 안전성과 진동 전달 문제 때문에 무조건 가볍게 만드는 것이 답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용도에 따라 강도, 생산성, 경제성, 성형성 등에 서로 다른 강점이 있는 소재를 다양하게 개발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쟁사인 포스코는 지난해 3월 금속 중 가장 가볍다는 이유로 마그네슘(Mg)을 선택, 독일의 자동차 브랜드 포르쉐의 스포츠카 지붕에 합금 판재를 지붕에 납품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 대량 생산이 어렵고, 수소취성(물이나 대기와 반응해 폭발) 등의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했다.

현대제철은 다른 전략을 택했다. 구 팀장은 “자동차는 대량생산(경제성)도 고려해야 해야하기 때문에 현대제철은 합금 중에서도 알루미늄을 선택했고, 그 비율을 5% 정도로 줄인 ‘3세대강’을 확대 개발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제철의 기본 전략은 일정한 강도를 갖추고 있으며, 경제성이 있는 소재를 확대개발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현대제철은 오는 2017년까지 400억을 투자해 자동차 강판만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제3 신실험동을 추가로 신축할 예정이다. 차량 소재 외에도 조선용 합판, 에너지 및 기능성 강제 등을 연구할 예정이다. 연구소 인력 또한 현재 550명 수준에서 2020년까지 약 800명 정도로 늘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