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크 쉬르데주 지음|권지현 옮김|북하우스|180쪽|1만2000원

국내 한 카드사는 지난해부터 도입한 ‘눈치 안 보고 휴가 쓰기’ 캠페인이 잘 정착되고 있다고 했다. 부서별 직원들의 휴가 현황이 해당 부서장의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구조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직원들의 휴가도 ‘반강제로’ 장려를 해야 실행된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 기업이 평소 직원들의 휴식과 재충전에 얼마나 인색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류의 한국 특유의 기업 문화를 이방인의 눈으로 짚어본 책이 나왔다.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제목이 꽤나 도발적이다. 저자는 LG전자(066570)프랑스 법인장을 지낸 사람이다. 그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LG전자에서 경험한 한국식 기업 문화와 경영 방식의 민낯을 담았다.

필립스, 소니, 도시바 등 다른 글로벌 전자기업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저자는 LG전자에 합류할 때만 해도 ‘반(半) 한국인’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초현실적인 기업 문화를 마주하곤 깜짝 놀랐다.

이를테면 한국 본사 TV 사업본부장이 불시에 프랑스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프랑스 법인 직원들이 총출동해 유통 매장에 LG 제품으로만 전시해 놓은 일이다. 물론 본부장이 떠나자마자 제품들을 다시 원상복귀시키느라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갔다. 보여주기를 위한 일회성 비용이었다.

2006년 12월 외국인 최초로 상무로 승진하면서 신임 임원 연수에 참석했을 때의 일도 저자로서는 당혹스러운 기억이다. 연수 마지막 날 만찬 자리였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그는 야외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4시간 동안 술을 마셨다. 술만 마신 게 아니라 환호성과 충성 맹세가 이어졌다. 이방인의 눈에 이 모습은 종교 집회를 방불케 했다.

절정은 과로로 쓰러진 한 동료의 말이었다. 그 동료는 수술을 마치고 의사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업무에 복귀할 수 있느냐고. 조직 내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인들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 같은 한국인들의 문제 핵심을 기업의 강력한 위계질서에서 찾고 있다. 기업이 이토록 강력한 위계질서를 확립한 데는 가정부터 학교, 사회, 국가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서열 구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버지, 선생님, 교수님, 상사로 이어지는 명령과 복종의 먹이사슬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분석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저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창의성의 시대에도 이런 한국식 경영 방식이 유효한가 하는 것이다. 그는 여러 가지 창의적인 마케팅을 한국 기업 특유의 효율성과 접목해보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정자와 수행자가 엄격하게 분리된 서열 문화에 번번이 부딪혔다고 토로한다.

때마침 LG전자의 2분기(4~6월) 실적이 나왔다. 이 기간 LG전자는 24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그간 실적을 견인했던 모바일 부문 영업이익은 불과 2억원에 머물렀다고 한다. 애플-삼성 스마트폰 양강 구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중국의 화웨이나 샤오미 같은 중저가 업체들이 추격해 오면서 LG만의 브랜드 파워를 만들어내지 못한 탓이 크다.

그래서 이 책을 이방인의 뻔한 지적 내지는 LG전자 해외법인에서 끝까지 살아남지 못한 자의 넋두리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