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는 2015년 3월말 기준으로 1100조원에 달한다. 2005~2010년 연평균 매해 9.3%씩 늘어나던 가계부채는 2012년 5.2%, 2013년 6.0%로 증가율이 둔화되는가 싶더니 2014년 8월 주택대출규제(LTV·DTI) 완화 이후 다시 급증세로 돌아섰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은 2014년에 전년대비 10.2%, 2015년 1분기엔 전년동기대비 11.3% 늘었다.(아래 표 참조).

가계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정부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되뇌이고 있다. 연체율이 0.4%로 안정적이고, 금융자산의 증가 속도가 금융부채 보다 빠르다는 점 때문이다. 가계부채가 소득 상위 40%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가계부채의 질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다고 분석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정부의 속내가 편할 리는 없다. 가계부채가 너무 빠른 속도로 늘기만하고 줄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가계대출이 대부분 이자만 갚다가 또다시 이자만 갚는 대출로 갈아타는 거치식 또는 만기일시상환 방식이기 때문이다.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갚는 대출 비중은 2014말 기준 74%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미국은 이자만 갚는 대출 비중이 14%에 불과하고, 영국과 호주는 33%와 30% 수준이다. 누가봐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구조다. 우리나라 가계대출중 금리인상기에 취약한 변동금리 대출 비중도 77%에 이른다.

그래서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이자 뿐만 아니라 원금도 갚아나가는 분할상환방식대출의 정착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전체 주택담보대출중 분할상환대출 비중을 45%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목표다. 고정금리대출 비중도 40%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그 출발점은 ‘안심전환대출’이었다. 금융위원회는 주택금융공사 재원을 활용해 '변동금리 또는 이자만 내고있는 대출'을 '고정금리이면서 원금을 나눠 갚는 대출'로 전환해주는 안심전환대출을 지난 3월 24일 전국 16개 시중은행을 통해 일제히 내놨다.

이자만 갚는 대출자들을 불러모으려면 무엇보다 금리가 중요했다. 이 때문에 금융위는 안심전환대출 금리를 연 2.53~2.65%로 책정했다. 3월 이후 한국은행이 한 두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을 전제로 예상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금리를 정했다.

금리가 낮다보니 인기를 끈 것은 자명했다. 고정금리인데도 당시 기준으로 변동금리 대출보다 금리가 저렴해 대출자들이 몰려들었다(3월 변동금리 대출 금리는 평균 2.9%대). 총 20조원 규모로 진행하려고 했지만 사흘만에 조기 소진됐고, 금융위는 20조원 한도로 추가 집행을 결정했다. 다만 2차분은 수요 부족으로 14조원이 신청되는데 그쳤다. 원금을 쪼개서 갚아나가기 힘든 가계가 적지 않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2015년 3월 29일, 안심전환대출 2차 출시를 결정한 뒤 기자회견을 하는 임종룡 금융위원장

안심전환대출 출시로 인해 분할상환대출,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각각 33%선으로 올라섰다. 정부가 우려하는 리스크가 상당 부분 덜어진 셈이다.

큰 인기를 끌었던 안심전환대출이지만, 국회에서는 서민층을 외면한 중산층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은 "안심전환대출을 받은 100명 중 5명이 억대 연봉이고, 절반이 신용등급 1등급에 해당된다"면서 "위험성이 낮은 가계에 혜택이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안심전환대출이 분할상환 관행 정착 등에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안심전환대출 출시 이후 분할상환에 대한 대출자들의 거부감이 덜해졌다는 것이 시중은행들의 설명이다.

물론 원금을 같이 갚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당장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분할상환이 더 많다. 대출원금 1억원의 경우 일시상환을 선택하면 매월 29만원의 이자만 내면 되지만 분할상환을 선택할 경우 58만원을 은행에 내야 한다.

정부는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주신보) 출연료율을 개편해 은행이 스스로 분할상환 대출을 취급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만기일시상환이나 거치식 등 이자만 갚는 대출을 취급하면 당장 은행이 출연해야 하는 주신보기금 부담이 많아져 자연스레 분할상환 대출 위주로 취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분할상환대출과 만기일시상환대출의 금리 차이는 연 0.3%포인트 내외다. 정부의 출연요율 개편으로 분할상환대출의 이자가 거치식 이자 보다 더 싸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