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까지만 해도 원화 강세와 엔저(円低)로 고민했던 외환시장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지난달까지 1100원대 언저리에서 움직이던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어느새 1170원 근처까지 가파르게 올랐다.

27일에도 원·달러 환율은 오전 한때 3년여 만에 처음으로 1170원을 돌파했다가 전 거래일보다 0.9원 하락한 1167원에 거래를 마쳤다. 100엔당 885원대까지 떨어졌던 원·엔 환율도 940원대로 올라섰다.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은 일본과의 수출 경쟁에서 가격 경쟁력 저하로 신음하던 한국 수출 기업들에는 단비 같은 소식이다. 다만 이 같은 원화 약세로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 외국인의 이탈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반갑지 않은 뉴스다.

강(强)달러에, 외국인 매도 맞물려

최근의 환율 급등세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고되면서 강도를 더해가는 강(强)달러 기류를 꼽는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올해 안에 금리를 올리겠다고 공언하면서 글로벌 금융 전문가들은 이르면 9월, 늦어도 12월부터 미국의 금리 인상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간 이어진 제로(0) 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이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한다는 것은 경기가 좋아졌다는 신호이자, 그동안 풀린 돈줄을 죄겠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미 달러화는 다른 통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원화 환율 상승세는 다른 신흥국 통화보다 가파르다. 최근 3개월간 원화는 8.2% 절하돼 멕시코나 태국, 말레이시아보다 절하 폭이 더 크다. 한국보다 절하 폭이 더 큰 나라는 원자재 가격 폭락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러시아나 브라질 정도다.

이런 현상은 39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 등으로 달러 공급이 충분해서 그동안 반영되지 않았던 달러화 강세가 한꺼번에 반영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김용준 외환팀장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좋다고 해서 원화 강세 쪽에 베팅을 했다가 미국 금리 인상, 중국 경기 둔화 등의 이슈가 부각되면서 환율이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며 "장기적으로 보면 지금의 환율 수준은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여기에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 외국인의 매도가 맞물리면서 환율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올 2월부터 5월까지 한국 주식시장에서 10조원 이상을 순매수했던 외국인은 지난 6월부터 팔자세로 돌아서 약 두 달간 3조원 이상을 순매도했다. 이달 들어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은 7500억원가량을 순매도했다. 외환은행 서정훈 연구위원은 "원화 환율이 올라가면 환차손을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이로 인해 원화 환율이 더 빠르게 오르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엔 단비… 추가 상승 여력은 적은 편

환율 상승은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 긍정적 측면이 더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우리금융연구소 송경희 수석연구원은 "기대할 곳이 수출밖에 없는 상황에서 환율 상승으로 수출 경쟁력 제고에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되고, 저물가 현상 완화에도 다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대감에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이른바 '현대차 3인방' 주가는 27일 각각 4% 이상 급등했다.

하지만 지난 1개월간 환율 상승 속도가 워낙 빨랐던 만큼 추가적인 상승 여력은 적은 편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1170원 선, 장기적으로는 1200원 선이 저지선으로 거론된다. NH투자증권 안기태 연구원은 "경상수지 흑자가 매우 높은 수준이고, 엔화의 추가 약세 여력도 적은 편이어서 환율이 지금보다 많이 오르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나금융연구소 장보형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인의 신뢰도가 낮아졌다고 보기는 어려워 지금의 환율 상승은 일시적인 오버 슈팅(단기 과열)으로 본다"며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