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노 S. 프라이 지음|유정식 등 옮김|부키|376쪽|1만8000원

실업자가 되면 소득이 없어진다. 대신 추가 여가가 생긴다. 전통 경제학에서는 노동을 ‘여가를 포기하게 하는 고통스러운 것’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실업이 꼭 행복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유 시간 외에 실업수당까지 받으면 상실한 소득도 어느 정도 보전되니 말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1975~1992년 유럽 12개 국가에서 삶의 만족도 조사가 진행된 적이 있다. 이 자료를 활용해 실업 상태일 때와 고용 상태일 때의 행복도를 측정했다. 소득이나 교육 등 행복에 관한 기타 결정 요인들은 통제됐다.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실업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행복이 고용 상태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낮았다. 다른 국가에서 다른 시기에 진행된 연구에서도 실업 경험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결과들이 나왔다.

이 책의 저자는 “실업은 인플레이션보다 사람들의 주관적 안녕감에 훨씬 강력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주며, 이는 단지 소득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일을 하지 못하는 데서 느끼는 상실감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이나 삶의 만족을 전통 경제학에서는 ‘효용’이라고 부른다. 이 효용이라는 개념은 수치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하지만 저자는 행복이나 삶의 만족은 심리학에서 쓰이는 ‘주관적 안녕감’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측정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객관성을 중시하는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효용을 유추한다. 반면 행복 연구에서는 개인에게 직접 감정 상태와 삶에 대한 만족 정도를 묻는다. 수치로 제시되는 답을 계량화해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불행한지를 파악한다.

돈이 많으면 누구나 행복할까? 저자에 따르면 소득과 같은 물질적 가치는 행복에 영향을 주는 여러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좋은 평판과 같은 사회적 관계, 자율성 등 비물질적 가치도 행복에 영향을 준다.

흔히 소득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행복 수준이 높아질 거란 생각은 결과적 효용을 과대평가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현재’ 상황에 적응한다. 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면 순간적으로 만족감을 느끼지만 금세 새 소득 수준에 적응하기 때문에 처음 느낀 만족감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반대로 결과보다 과정이 중시되는 절차적 효용은 더 큰 만족감을 준다. 예컨대 자영업자는 회사에 다니는 근로자보다 직무 만족도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자영업자는 직장인보다 직업 안정성과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자영업자의 만족도가 더 높은 것은 이들이 직장인보다 더 큰 자율성을 갖고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행복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개인이나 사회가 왜 행복하다고 느끼는지를 알아보고, 이를 어떻게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를 소개한다. “행복 연구는 공공정책 수립에 유용하게 사용되며 사회 후생 증대에도 도움을 준다.” 저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