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을 집중적으로 준비한 석 달 동안 단 하루도 맘 편히 잠잔 적이 없습니다. 입찰에서 떨어지는 악몽을 꾸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얼마 전 끝난 면세점 사업자 선정 입찰에 참여했던 한 대형 컨설팅 업체 임원의 얘기다. 지난 10일 발표된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자 선정은 입찰에 뛰어든 대기업뿐만 아니라 이 기업들을 조언한 컨설팅 업체들에도 사활을 건 싸움이었다. 십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큰 규모의 입찰이었기 때문에 컨설팅 회사들은 그동안 쌓아온 모든 역량을 이번 사업 조언에 쏟아냈다.

◇대형 컨설팅 기업들의 막후 대첩

이번 대기업 면세점 입찰에서는 국내외에서 대표적인 컨설팅 업체들이 대거 출동해 자웅을 겨뤘다. 삼일회계법인은 HDC 신라면세점·현대DF·롯데면세점, 딜로이트 컨설팅은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매킨지는 SK네트웍스를 조언했다. 삼정KPMG는 중소기업군인 유진기업을 조언했다.

컨설팅 업체들은 이런 큰 싸움에서 얼마만큼의 화력(火力)을 보여주느냐가 향후 기업의 조언을 맡는 데 중요한 '홍보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다. 컨설팅 업체들은 중요한 승부처였던 만큼 최정예 멤버들을 모았다. 비슷한 입찰 업무를 많이 해봤는지, 승률은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한 선별 요소였다고 한다.

컨설팅 업체와 계약을 맺은 기업 쪽에서도 멤버들의 면면을 확인했기 때문에 한 명도 소홀히 고를 수 없었다고 한다. 한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비슷한 컨설팅에서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고, 10년차 이상인 에이스급 인재들로 팀을 꾸렸다"면서 "구성된 팀은 '공포의 외인구단' 수준이라고 할 만했다"고 말했다.

◇'인력 빼가기'도 다반사

"함께 일하던 사람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을 받으면 의심부터 생겼다."

입찰전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는 '인력 빼가기'다. 예를 들면 한 기업의 입찰 준비팀에 있던 인력을 경쟁 기업의 입찰 준비팀이 중간에 스카우트를 해 가는 식이다. 이럴 경우 경쟁 기업이 준비 중인 히든카드나 진행 상황 등이 경쟁 업체 손에 고스란히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팀원들끼리도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상황이 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실제로 그런 사례가 몇 번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주요 보직에 있던 직원이 느닷없이 '쉬고 싶다'며 사표를 냈는데 나중에 관세청에서 있었던 프레젠테이션 현장에 상대팀 일원으로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사활을 건 정보 전쟁

이번 면세점 사업자 선정은 입지를 어디로 정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각 팀은 경쟁 기업이 혹시 특정 지자체나 재래시장 등과 협약을 맺는지 여부도 꾸준히 확인했다. 기업에 따라서는 어디에 면세점이 들어설지 과감하게 초기에 공개한 곳도 있지만, 끝까지 감추는 전략을 쓴 곳도 있었다.

보안 작업의 최후 관문은 '인쇄'였다. 이번 입찰은 6월 1일까지 관세청에 사업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과거 큰 입찰전에서 사업 보고서를 인쇄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흘러나간 일도 있었기 때문에 각 회사는 마지막까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제출 마감일자가 가까운 5월 말 각 기업과 컨설팅 업체들은 평소 거래해왔던 인쇄소 가운데 믿을 만한 곳과 협의해 보안 각서를 쓰고 300~400페이지짜리 사업 보고서 인쇄에 들어갔다. 특히 주말을 이용해 사흘가량 가게 문을 내린 채 사업 보고서를 복사하고 제본까지 마쳤다고 한다.

이 치열한 막후 대첩에서 마지막에 웃은 승자는 대기업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된 HDC 신라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를 각각 조언한 삼일회계법인, 딜로이트 컨설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