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음료 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과일을 짜서 만드는 '착즙 주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다. 과즙 농축액에 정제수를 넣어 만드는 주스가 1~2세대 주스라면 과일을 짜낸 즙으로 만든 착즙주스는 3세대로 통한다. 작년 230억원 규모였던 국내 착즙주스 시장은 계속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체들도 앞다퉈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착즙주스가 인기를 끌게 된 요인 중 하나는 그전까지만 해도 비쌌던 유통 비용을 '무균(無菌) 충전 방식(aseptic filling system)'을 통해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웅진식품은 작년 7월 이 기술을 이용해 다른 착즙주스보다 40% 정도 싼 '자연은 지중해 햇살'을 내놓았다. 출시 직후 17%에 불과했던 시장 점유율은 1년도 되지 않은 올 5월 48%까지 오르며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 무균 충전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웅진식품의 주스를 제조하는 삼양패키징(구 아셉시스글로벌)과 롯데칠성음료 정도이다. 투자비가 일반 음료 제조 방식의 3배에 달하기 때문에 음료업체들은 설비를 갖춘 이 두 회사에 의뢰해 제품을 만든다.

세균 침투를 막아라

무균 충전 방식은 음료 용기를 만들고 음료를 주입한 뒤 뚜껑을 닫아 밀봉하는 모든 과정이 무균 상태에서 처리된다. 쉽게 말하면 음료를 제조하는 모든 과정을 무균실에서 한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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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를 충전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고열 충전 방식'이 있다. 무균 충전 방식과 고열 충전 방식 모두 음료를 고온(高溫)에서 살균하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무균 충전 방식은 고온에서 순간적으로 살균한 뒤 음료를 급속 냉각시켜 상온(20~25℃) 상태에서 용기에 담는 반면, 고열충전방식은 고온 살균한 음료를 곧바로 용기에 담아 천천히 식힌다. 고열 방식은 그만큼 음료가 열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고 맛과 향, 색깔 등이 변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무균충전방식은 유통과정에서 변질되기 쉬운 우유나 차 음료, 우유를 첨가한 커피 같은 음료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술로 평가받는다. 특히 산도(酸度)가 높은 주스는 고열 방식으로 오랜 시간 열을 가할 경우 신선함이 떨어지기 때문에 무균 충전 방식으로 제조해야 맛과 향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무균 충전 제조 설비는 음료 제조 기계에 거대한 스테인리스 커버를 씌워 만든다. 무균실 내부는 고성능 에어필터로 여과시킨 무균 공기를 뿜어내 양압(대기압보다 약간 높은 압력)을 유지한다. 내부 압력이 낮으면 정화되지 않은 외부 공기가 빨려들어오기 때문이다.

음료 생산 공정과 용기 생산 공정을 결합하는 것도 특징이다. 고열 방식에서는 음료 용기 완제품을 공병 제조 공장에서 받아와 세척한 뒤 사용한다. 하지만 무균 충전 방식은 오염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같은 공장에서 만든 음료 용기를 과산화수소나 과초산으로 세척해 사용한다. 음료 용기를 만들어 음료를 주입하고 뚜껑을 닫는 모든 과정이 멸균실에서 이뤄져 미생물 증식을 막는다.

신선 음료를 저렴하게 만드는 기술

무균 충전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면 변질 가능성이 낮아지고 유통기한이 길어져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다. 착즙주스처럼 냉장 유통만 가능했던 제품들은 상온에서 유통할 수 있어 냉장 설비를 갖출 필요가 없다. 생산·관리 비용이 모두 줄어드는 셈이다. 아낀 비용만큼 제품을 저렴하게 내놓을 수 있어 가격 경쟁력도 생긴다.

롯데칠성음료는 무균 충전 설비를 추가로 짓기 위해 올해 말까지 1158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국내 음료 업계 1위인 롯데칠성음료가 추가 설비를 갖추고 저렴한 상온 착즙주스를 내놓게 되면, 국내 시장에서 착즙주스 전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