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포스텍에 설립된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김판준 교수 연구팀은 1000종이 넘는 식품의 데이터를 분석해 최고의 영양소를 가진 슈퍼푸드(super food)를 찾아냈습니다.

단백질이 많은 식품군에서는 대서양의 바다 농어가, 지방이 많은 식품군 가운데는 아몬드가 뽑혔습니다. 탄수화물이 많은 식품 중에서는 체리모야, 무기질이 많은 식품 중에는 근대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연구는 식품의 관계망 분석하는 복잡계 연구와 빅데이터 분석 등 새로운 기법을 활용한 점을 인정받아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연구가 복권 수입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 김 교수팀을 지원한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는 복권에서 수입을 얻는 과학기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진흥기금은 1992년부터 20년 넘게 정부의 예산이 닿지 않는 과학기술계 곳곳에 사용됐습니다. 김 교수처럼 젊고, 도전적이지만 연구비를 따기 어려운 신진학자부터 자신의 경험을 활용해 과학문화 확산에 기여하는 은퇴 과학자까지 혜택이 두루 돌아갔습니다.

이 기금은 최근 수년 새 고갈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기금 적립액은 2007년 8672억원에서 2013년 1319억원으로 급감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부채는 7878억원으로 늘어났습니다. 매년 주요 수입인 복권 수입금의 4.0404%가 전입돼야 하는데 실제 전입비율이 3% 수준에 머물고 있고, 과거 정권에서 발행한 국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금액이 부채 규모를 늘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에는 기금의 완전 고갈이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부족해진 과학기술진흥기금을 늘리기 위한 ‘과학기술신탁특별법’이 발의되면서 작은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 등 10명의 의원이 지난 5월 발의한 이 특별법은 기업이 국내 과학계 대표단체인 한국과학기술학술단체총연합회(과총)에 주식을 위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주식을 위탁받아 배당금을 기금 확충에 쓰자는 것입니다. 민간기부 활성화를 통해 기금을 충당하자는 이 특별법에 대해 비판이 제기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특별법은 ‘의결지시권’이라는 권한을 부여해 실질적으로는 주식을 위탁한 기업이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주식의 배당 수익을 기금으로 쓰는 대신 기업에게 위탁에 참여한 혜택을 주려는 취지입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특별법이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악용될 소지가 더 크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의결지시권을 상속인에게 승계하도록 하고 있어 증여세와 상속세 감면 등 세금 탈루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과총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해 무배당이 의결되거나 배당액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기금 확충은 커녕, 후계 구도를 고민하는 기업인에게 편법상속의 길만 터주게 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과학계 한 원로 교수는 “중견기업의 대주주인 현 과총 회장 등 일부 기업인들이 세금 부담을 회피할 목적으로 입법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반면 현 과총 집행부는 이는 회장과 현 과총 집행부를 반대하는 단순 음해에 불과하다고 반박합니다.

과기계 인사들은 새로운 재원의 조성방법을 고민하기 보다는 기금 운영의 정상화가 우선이라고 지적합니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특별법을 만들기 보다는 복권수익 전입금의 정상화와 국채 이자와 원금 상환 문제만 해결해도 기금이 정상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진흥기금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인의 사기 진작과 과학문화 확산에 힘을 써달라며 국민들이 열심히 낸 세금과 복권 수익으로 조성된 요긴한 돈입니다. 일부 관료들의 무책임한 운영으로 부실화된 기금이 또 다시 부정한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