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원, 자문 보고서 8일 발간
국민연금, 10일 전후 의결위 개최 결정

17일 제일모직과 합병을 의결하는 삼성물산(028260)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분 11.21%(6월 11일 현재)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합병 승인 여부를 놓고 삼성과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이 벌이는 표 대결에서 국민연금이 핵심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지분 11.21%(6월 11일 현재)을 보유한 국민연금은 삼성과 엘리엇매니지먼트 간의 경영권 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삼성물산 주주총회 출석률을 70%로 가정했을 때 합병에 반대하는 엘리엇이 승리하려면 16.21% 이상의 지분을 더 모아야 한다. 엘리엇 지분 7.1%를 포함해 23.3% 넘으면 합병은 무산된다. 삼성 측도 46.7%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삼성물산이 확보한 지분은 KCC에 매각한 자사주를 포함해 19.8%. 주식의 1.7%를 보유한 삼성자산운용, 0.2%를 보유한 삼성생명 등은 계열사라 셰도우보팅(다른 주주들의 표결에서 찬반 비율대로 표를 나누는 것)에 나설 수 밖에 없다. 지분의 10% 를 보유한 국내 기관 투자자의 지지를 모두 끌어 모은다 해도 30%에 못미치는 상황이다. 삼성 입장에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다면 엘리엇과 해볼만하지만, 반대하거나 중립을 지키게 되면 패색이 짙다.

첫 번째 고비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을 맡는 기업지배구조원의 보고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업지배구조원은 8일 오후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된 보고서를 국민연금 및 계약을 맺고 있는 연기금, 운용사 등에 배포한다.

국민연금은 미국 의결권 자문사 ISS와 기업지배구조원에 관련 자문을 받고 있다. ISS는 2일 합병 반대 의견을 냈다. 기업지배구조원이 합병 찬성을 권고하면 ISS와 의견이 갈리는 형세가 되어 국민연금의 자체 판단이 중요해진다. 하지만 기업지배구조원이 합병 반대 입장에 서면 의결권 자문회사들이 모두 부정적인 분석을 내놓으면서 ‘국민연금도 합병에 반대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배구조원은 2002년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등 자본시장 유관단체들이 공동출자해 설립했다. 주요 상장사의 주주총회 의안을 분석해 의결권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두 번째 고비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자체 판단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느냐다. 국민연금 투자위원회는 기금운용본부장을 위원장으로, 기금운용본부 실장들과 본부장이 지명하는 3명 이내 직원이 참석해 의결권 행사 등 중요한 안건을 심의한다. 투자위원회가 판단하기 곤란한 사안은 자문기구인 주식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의결위)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다. 연기금 등 관계자들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10일께 의결위로 사안을 이관할 지 여부를 결정한다.

문제는 의결위가 정부, 사용자단체, 근로자단체, 지역가입자단체, 연구기관 등이 추천한 외부 인사들로 구성되면서 일반적인 금융투자업계의 시각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9명의 위원은 대체로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몸담고 있지만, 경제학을 전공한 연기금이나 금융 전문가가 대다수다.

사용자 단체는 노무 전문 변호사를, 근로자 단체는 대기업에 비판적인 참여연대 계열 경제개혁연구소 인사를 위원으로 위촉했다. 이 때문에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의결권 행사와 관련된 전문가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이상의 지식과 객관성을 확보한 ‘배심원’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의결위는 지난달 SK㈜와 SK C&C의 합병에 자사주 소각을 안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표를 던졌다. 당시 ISS와 대부분의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은 합병에 찬성해 큰 논란을 빚었다.

재계는 의결위로 관련 사안이 넘어갈 경우 찬성이냐 반대냐 결론을 내리는 것과 별개로 큰 논란을 빚을 것이라 관측하고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기금운용본부 내에 전문가들로 구성된 투자위원회가 있는데도 학계에서 법적 위상과 역할에 대해 논란이 있는 의결권전문위에 결정을 떠넘기는 것은 민감한 사안은 피하고 보는 보신주의”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재계와 금융투자업계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자체 판단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어차피 책임은 국민연금과 국민연금을 감독하는 보건복지부가 지게 돼있다”며 “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는 사안이라면 차라리 투자위원회 결정이란 형태로 정면돌파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