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학술지 ‘셀’의 자매지인 ‘셀 리포츠’는 지난달 30일 한국의 한 젊은 여성 과학자의 연구 논문에 주목했다. 논문의 주제는 ‘폴리큘라 헬퍼 T세포(Tfh세포)’로 불리는 세포에 관한 것으로, 사람의 면역반응에 중요한 세포의 분화과정을 처음으로 규명한 것이다.

이 연구는 면역시스템을 총괄하는 수지상세포가 Tfh세포를 분화시키고, 다시 사람 몸에 침입한 병원체를 기억했다가 이 병원체가 침입하면 막는 항체를 만드는 B세포로 분화되는 과정을 규명했다. Tfh세포의 이런 분화과정을 연구하면 흑사병과 에이즈, B형 간염 등 난치성 질환에 대한 백신과 자가면역 치료제 개발을 성큼 앞당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를 이끈 도윤경(43,여) 울산과학기술대(UNIST) 교수는 연구의 결실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지 못했다. 도 교수는 지난 3월 28일 지병인 난소암이 악화해 43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도 교수는 촉망 받은 젊은 생명과학자다. 포스텍 91학번으로 생명과학부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대에서 분자생물학 석사 학위를 받고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버지니아 의대에서 면역학으로 박사까지 받았다. 도 교수는 이후 세계 최초로 ‘수지상 세포’를 발견해 2011년 노벨상을 받은 랠프 슈타인만 미국 록펠러대 교수의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2009년 당시 막 개교한 UNIST의 교수로 부임해 활발한 연구를 벌이던 중 난소암 판정을 받았다.

도 교수는 신생 학교인 UNIST 설립 초기에 결합하면서 학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평소 “사람들이 산속에서 쉬라고 하지만 저는 학교 제 방에서 제일 좋아하는 연구를 하는 것이 좋다. 동료 교수들과 이야기하고 점심 먹고, 커피 내기하는 소소한 일상이 좋다”고 말하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논문이 게재된 지난 30일은 도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100일을 닷새 앞둔 날이다. UNIST는 이날 도 교수를 그리워하는 가족, 동료, 동문의 추모글을 홈페이지에 공개해 암 투병 중에도 연구 활동을 쉬지 않던 그녀를 추모했다. 도 교수의 남편인 류성호 순천향대 의생명연구원(SIMS) 교수는 추모글에서 “도 교수에게 UNIST는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며 “도 교수가 고통을 참으면서 후학들에게 가르치려고 한 것은 단순한 지식뿐만 아니라 자부심이었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도 교수와 이번 논문을 함께 이끈 공동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려 아내의 마지막 연구에 방점을 찍었다.

도 교수의 동료였던 조윤경 UNIST 생명학부장은 “너무나 힘든 투병과정에도 연구에 대해 식지 않은 열정으로 이뤄낸 성과임을 알기에 더 감사하다”며 “도 교수가 한국의 면역학 연구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더 크다”며 애석해 했다.

류 교수는 “이번 연구는 ‘Tfh세포’ 분화 과정의 비밀을 밝혀내 백신의 효능을 향상은 물론 새로운 자가면역 치료제 개발의 기반도 마련했다”며 “한국의 백신 및 항체 관련 질병 치료제 개발기술의 우위를 선점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