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었지만 쓸모없진 않아"라는 T-800(아널드 슈워제네거)의 대사에서 이 프랜차이즈 영화의 고민이 읽혔다.

2일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해묵은 SF 영화로 가고 있었다. 인류와 기계가 벌이는 전쟁, 과거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철학, 알몸으로 툭 던져지는 시간여행, 진화한 로봇과 특수효과…. 31년 전 출발한 이 영화의 알맹이는 '매트릭스' '트랜스포머' '인터스텔라' '어벤져스'에게 제각각 빼앗긴 게 아닐까. 1·2편의 인상적인 장면을 재가공하고 이야기를 비틀면서 오락물로서 존재 증명을 하지만 앞으로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지 막막해진다.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개봉된 날 서울에서 기자들을 만난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 오른쪽은 그의 배역인 터미네이터 T-800이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2029년 존 코너(제이슨 클락)가 이끄는 인간 저항군과 로봇 군단 스카이넷의 미래 전쟁, 1984년 존의 어머니 사라 코너(에밀리아 클라크)를 구하기 위한 과거 전쟁, 그리고 2017년의 현재 전쟁을 동시에 그린다. 오랫동안 사라를 보호하면서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된 T-800과 미래에서 온 존의 부하 카일 리스(제이 코트니)는 나노 터미네이터 T-3000과 싸워야 한다.

킬링타임용 액션물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살고 싶으면 따라와요" "곧 돌아올게" 같은 명대사가 변주되는 대목도 흥미롭다. 하지만 '터미네이터'(1984)와 '터미네이터 2'(1991)의 충격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 후속편이 실망스러울 것이다. 어쩌면 액체금속 T-1000(이병헌)이 나오는 초반 15분이 가장 무섭고 소름끼칠지도 모른다.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67)가 이 프랜차이즈 영화로 돌아온 것은 12년 만이다. 그는 2일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터미네이터'는 내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었고 이번 시나리오는 창의적인 구성과 긴장감, 반전에 끌려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사라가 T-800을 끌어안는 대목을 꼽았다. 그와 함께 방한한 에밀리아 클라크는 이병헌의 연기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훌륭했다"고 했다.

이 영화는 터미네이터도 늙는다는 설정을 처음으로 보여준다. T-800의 잿빛 머리카락, 노화(老化)를 마주하는 기분이 묘하다. 슈워제네거는 "다음 후속편에 참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얼마나 사랑을 받느냐가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