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업계는 여름철만 되면 홍역에 시달린다. 통상 노사가 임금·단체협약을 여름에 진행하기 때문이다. 노조는 실적 대비 과도한 임금인상안과 요구조건을 내세워 사측을 압박한다. 올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노조는 자신들의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파업에 나설 태세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의 파업을 말릴 방법이 없다. 노조가 짜여진 각본대로 ‘노동쟁의 조정제도’를 활용하면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회사는 생산중단으로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고 항복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노동쟁의 조정제도가 무엇이길래 이런 부작용을 내는 것인지 문제점을 살펴본다.[편집자주]

현대자동차노조는 1987년 설립 이후 4년을 제외하곤 연례행사로 파업을 반복해왔다. 해외공장 대비 국내공장의 생산성이 떨어지는데다 고임금 구조지만 실제 파업에 들어갈 경우 2조원 이상(2013년)의 피해가 발생한다.

올해 현대차 노사는 상견례를 했고 임단협에 돌입했다. 현대차 노조는 아직 요구안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임금 15만9900원 인상과 당기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월급제 시행 등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이에 앞서 국내 공장 신설 및 증설 검토와 해외 생산 물량에 대해 노사간 합의도 주장하고 있다.

한국GM 역시 올 4월 상견례와 1차 교섭을 가졌다. 한국GM 노조는 지난해 회사가 15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냈지만, 기본급 15만9900원 인상과 성과급 500%와 같은 무리한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물가상승률과 최근 2년간의 임금감소 등을 고려, 올해는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한국GM 노조는 이달 18일 ‘노조 확대간부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노동쟁의 조정신청을 결의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르면 노사간에 임금 등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주장이 달라 발생하는 분쟁상태를 ‘노동쟁의’라고 한다. 즉 노사가 자율적인 교섭으로 분쟁이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노조는 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문제는 노조가 유리한 교섭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해 쟁의권 확보 수단으로 노동쟁의 조정제도를 활용한다는 것. 중앙노동위원회에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접수된 조정신청은 총 8030건에 달하지만, 이중 4.1%(379건)만이 행정지도 결정이 내려졌다. 행정지도는 노조법상 노동쟁의 발생이 아니므로 추가 조정신청 없이 파업에 나설 경우 불법으로 규정한다. 반면 나머지 7651건(95.9%)은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인정, 파업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후반 20%를 넘던 행정지도 비율은 지난해 5% 수준으로 낮아졌다.

그렇다면 중앙노동위원회가 행정지도를 내리는 건수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앙노동위원회가 인력 부족으로 개별 기업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자동차업계처럼 여름철에 임금·단체협약이 몰릴 경우 조정신청이 빗발치지만 이에 대한 타당성을 일일이 따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앙노동위원회가 노사간 교섭차수만 형식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쉽게 말해 노사간 여러번 만나 협상을 했다고 해도 협상 자체가 진전이 없을 경우엔 차수가 큰 의미가 없다는 것. 이승길 교수는 “(중앙노동위원회가) 기업의 현실을 노사가 직시할 수 있도록 자율적 교섭에 따른 의견 합치를 위해 노력하라는 주문을 낼 필요가 있다”며 “당사자간 협의 노력이 충분한지, 자율적 교섭 여지는 없는지 자세히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