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6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오전 내내 쏟아진 비의 영향으로 이 일대 도로와 건물들은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명품 브랜드 매장이 즐비한 압구정로는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임에도 비교적 한산했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동관) 길 건너 지방시 매장을 끼고 안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약 200m 정면에 감각적인 디자인의 하얀 건물이 보였다. 목적지인 패션 명품 편집매장 ‘분더샵(Boon the shop) 청담’이었다. 멋스러운 점프수트(상의와 하의가 하나로 연결된 옷)를 유니폼으로 입은 남성 여러 명이 건물 앞 도로변에서 발렛주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날은 애플의 손목시계형 웨어러블(착용형) 기기 ‘애플워치’가 국내에 상륙한 첫 날이다. 국내에서 애플의 기존 공식 판매점 외에 애플워치를 선보인 곳은 분더샵 청담이 유일하다. 이미 아침 일찍 서울 중구 명동 프리스비 매장에서 200m 이상 늘어선 대기줄을 보고 애플워치의 인기를 실감한 상태. 강 건너 청담동의 열기는 어떤 모습일지 새로운 궁금증을 안고 분더샵의 문을 열었다.

분더샵 청담(왼쪽 나무 뒷편 건물) 앞 길가의 풍경. 매장에 방문한 26일은 아침부터 비가 내려 날이 흐렸다.

◆ 3층 비밀공간에서 2200만원 애플워치 홀로 쇼핑

분더샵 청담 내부는 잔뜩 흐린 바깥 날씨와 달리 활기를 띠고 있었다. 유동 인구가 넘쳐나는 명동 프리스비 매장처럼 길게 줄을 서서 구경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20여명의 고객이 1층 한 켠에 마련된 진열대 주변에 서서 애플워치를 고르느라 분주했다.

매장 직원을 따라 곧장 3층으로 올라갔다. 분더샵 청담에서 제공하는 애플워치 1대1 상담을 체험하기 위해서다. 분더샵 청담 3층은 원래 상류층 고객 중에서도 극소수만 이용할 수 있는 VVIP 공간이다. 백화점에서 ‘PSR(Personal Shopper Room)’이라고 부르는 개인 쇼핑룸과 같은 개념이다. 안내를 맡은 직원은 “애플워치 상담의 집중도를 높이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제품을 관찰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3층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층에 있는 5평(약 16.53m2) 남짓 독립 공간에 들어서자 쇼파와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는 애플워치 에디션 제품들이 전용 케이스에 담겨 진열돼 있었다. 애플워치 에디션의 가격은 1300만~2200만원에 이른다. 제품이 담긴 케이스는 충전 기능도 겸한다. 이 곳에서는 주로 고가인 에디션 제품에 대한 상담이 이뤄진다. 분더샵 청담에 방문하는 고객 상당수가 구매력을 갖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객이 원하면 기본형과 스포츠형 모델도 볼 수 있다.

(왼쪽부터)18K 옐로 골드 케이스와 미드나이트 블루 클래식 버클(42mm), 18K 옐로 골드 케이스와 브라이트 레드 모던 버클(38mm), 18K 로즈 골드 케이스와 로즈 그레이 모던 버클(38mm). 가격은 1300만원부터 시작한다.

애플워치 에디션은 총 8가지 스타일로 출시됐다. 본체 케이스는 일반 금의 최대 2배 강도를 지닌 특수 18K 금으로 만들어졌고, 디스플레이는 사파이어 크리스탈로 이뤄졌다. 이날 분더샵 청담에서는 ‘18K 옐로 골드 케이스와 브라이트 레드 모던 버클(38mm)’, ‘18K 로즈 골드 케이스와 로즈 그레이 모던 버클(38mm)’, ‘18K 옐로 골드 케이스와 미드나이트 블루 클래식 버클(42mm)’ 등 3가지 모델을 살펴보고 착용해봤다.

애플워치 1대1 상담은 애플 측에서 파견된 직원이 직접 맡는다. 이 직원은 애플워치의 기능을 설명해주고 고객의 질문에 답하는 역할을 한다. 시계 착용을 돕기도 한다. 매니저급 이상의 한국 애플 직원들은 미국 현지에서 온 전문가에게 직접 교육을 받은 후 고객 응대에 나선다.

1대1 상담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사전 예약제로 이뤄진다. 1시간에 한 팀씩 하루에 총 11개 팀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분더샵 청담 관계자는 “오늘 상담 예약은 진작에 다 찼다”며 “(기자가 도착하기)1시간 전쯤 상담 고객 중 한 명이 2200만원짜리 모델을 사갔다”고 귀뜸했다. 1층에서 만난 한 여성 고객은 “영화배우 고소영씨와 오지호씨도 아까 이곳에서 애플워치를 사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구입한 애플워치는 고가의 에디션 모델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분더샵 청담을 찾은 고객들이 매장 1층에 마련된 진열대에서 애플워치를 살펴보고 있다.

◆ “분더샵 청담 고급 이미지, 애플 명품화 전략과 일치”

애플이 고가의 패션 아이템만 판매하는 분더샵 청담을 한국의 애플워치 판매처로 정한 이유는 이 회사의 ‘패션화, 명품화’ 전략 때문이다. 애플은 애플워치를 전자기기인 동시에 고급 패션 아이템으로 보고 판매처도 이원화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 일본 도쿄 신주쿠 이세탄, 영국 런던 도버스트릿 마켓 등 소수의 해외 패션 매장에서도 애플워치를 구입할 수 있는 이유다.

애플은 애플워치의 패션화, 명품화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영국 버버리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앤젤라 아렌츠를 영입한 데 이어 올해 1월 버버리의 디지털 인터랙티브 디자인 부문 부사장이던 체스터 치퍼필드를 영입했다. 명품 패션 브랜드 생 로랑의 폴 드네브 CEO와 유명 산업디자이너 마크 뉴슨도 각각 2013년과 지난해 9월 애플에 합류했다.

신세계(004170)가 운영하는 분더샵 청담은 세계적인 건축가 피터 마리노의 설계로 지난해 10월 오픈했다. 문을 연 직후부터 국내외 유명 연예인과 디자이너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달 20일에는 전설적인 영국 밴드 비틀즈의 멤버 폴 메카트니의 둘째 딸이자 유명 디자이너인 스텔라 메카트니가 이곳에서 패션 관련 행사를 열기도 했다. 신세계뿐 아니라 삼성, LG 등 국내 재벌가(家) 2, 3세들도 분더샵 청담의 단골 고객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하리 신세계 MD마케팅팀 팀장은 “분더샵 청담은 국내외 여러 고급 패션 브랜드에서 먼저 협업 제안을 할 만큼 품격과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며 “애플워치를 판매하는 전세계 일부 패션매장 가운데 하나로 분더샵 청담이 정해진 것도 애플의 명품화 전략과 부합하는 매장 이미지 덕분”이라고 말했다.

분더샵 청담의 주간(위)과 야간의 외관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