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한남동에 있는 남성용 이발소 '헤아(HERR)'에는 독특한 것이 많다. 1층은 이발소지만, 2층에서는 남성 셔츠와 넥타이를 팔고, 구두 관리도 해주는 공간이 있다. 이발소에 있는 6개의 가죽소파는 뉴욕에서 공수해왔고 이발사들은 정장(正裝)을 입는다. 이발 비용은 3만5000~24만원. 면도와 마사지 등이 포함될수록 가격이 더 비싸다. 이상윤 헤아 대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남성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매일 20~40명의 남성 손님이 찾는다"고 말했다. 고객이 늘어 올해 2·3호점도 냈다. 이런 고급 남성 전용 이발소는 서울에만 3~4곳이 성업하고 있다.

국내 그루밍(grooming)족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루밍족(族)은 자신을 꾸미는 데 많은 신경을 쓰는 남성을 뜻하는 말이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두 곳이던 고급 이발소가 속출하고 남성용 명품(名品) 지갑 등을 파는 남성 전용 편집숍도 등장했다. 기초화장품을 넘어 색조(色調) 기능까지 넣은 남성용 화장품도 나와 있다.

폭발하는 男性 전용 제품들

제일모직은 최근 여성복보다 신사복 개발과 판매에 더 주력하고 있다. 물빨래를 할 수 있는 신사복 '로가디스 워셔블'을 냈고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면 벨소리가 울리지 않게 해주는 로가디스 스마트수트를 개발했다. 과거에는 한 매장에서 한 브랜드를 팔던 방식을 여러 신사복 브랜드를 동시에 한 매장에서 파는 것으로 바꿨다. 남성 고객의 취향을 맞추기 위함이다. 제일모직은 이런 매장을 현재 3개에서 10개로 늘릴 방침이다.

LF는 자사 브랜드인 닥스액세서리의 남성용 클러치백(핸드폰과 지갑 등을 넣고 다니는 작은 가방)의 종류를 작년 12개에서 올해 29개로 늘렸다. 가방 등 잡화 브랜드인 루이까또즈는 작년에 남성 전용 매장인 루이스클럽을 따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고급 남성 전용 이발소를 매장 안에 입점시키기도 했다.

유통업체도 그루밍족을 잡기 위한 서비스 개발에 발벗고 나섰다. 롯데백화점은 최근 서울 소공동 본점 내에 남성 전용 패션 매장 '클럽 모나코 맨즈샵'을 만들면서 남성 전용 고급 이발소도 매장 안에 넣었다. 이발도 하면서 쇼핑도 즐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작년 9월 서울 충무로 본점에 해외 명품만 모은 남성 전문관을 만들었다.

화장품 업체들은 남성 화장품 시판을 늘리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작년 출시한 '아이오페 맨 에어쿠션'은 제품에 달린 거울을 보며 분첩을 이용해 피부 색깔과 잡티를 보정해주는 남성 화장품이다. 작년 LG생활건강은 남성 전용 주름개선·미백 기능성 화장품인 '보닌 마제스타'와 남성용 한방 화장품 브랜드 '후군(后君)'도 내놨다.

'꾸미는 남성'들이 시장 견인

LF '클러치백'(왼쪽), LG '보닌 퓨어 올인원'.

국내 남성용품 산업은 '꾸미는 남성' 증가로 급팽창하고 있다. 일례로 로가디스 스마트수트의 경우 올 상반기 판매액수가 작년 같은 기간의 2.2배 수준이었다. LF 닥스 액세서리 클러치백도 작년보다 40% 정도 판매가 늘었다.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792억원으로 5년 전 대비 63% 성장했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스킨, 로션 같은 기초 화장품만 주로 쓰던 남성들이 다양한 기능성 화장품을 사는 데 주목한다. 색조 화장품 기능까지 갖춘 아모레퍼시픽의 아이오페 맨 에어쿠션 올해 판매량은 작년의 3배에 달한다.

박찬영 신세계 부사장은 "일본 이세탄백화점은 2003년 남성 전용관을 만들어 2007년에 꽃을 피웠다"며 "일본의 2007년 1인당 구매력이 현재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소득이 늘어난 한국 남성들이 자신에 대한 투자를 본격 시작하고 있는 만큼 남성용품 산업의 전망이 밝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