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지배 구조 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계열사간 합병을 통해 지주회사 전환을 꾀하거나 순환 출자의 고리를 끊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순탄치 않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부터 잡음이 일었다. 일부 주주들이 두 회사의 합병 비율에 문제가 있다며 들고 일어났다. SK와 SK C&C의 합병을 앞두고도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합병 비율을 둘러싼 논란은 왜 나오는 것일까?[편집자]

합병 비율이 뭐길래 이렇게 문제라는 것일까?

두 회사를 합칠 때 가장 눈여겨봐야 하는 숫자가 바로 합병 비율이다. 두 회사를 합칠 때 어느 회사가 그 가치를 더 많이 인정받는지를 보여준다.

A라는 회사가 B라는 회사를 흡수 합병할 경우, B회사의 주식을 A회사의 주식으로 바꿔주는데 그 비율을 뜻하는 말이 바로 ‘합병 비율’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0.35로 책정됐다. 삼성물산의 주식 100주를 제일모직의 주식 35주로 바꿔준다는 뜻이다. SK C&C와 SK의 합병비율은 1:0.73이었다. SK의 주식 100주를 가진 주주는 SK C&C 주식 73주로 바꿔받을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SK 최태원 회장.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앞두고 잡음이 일고 있다. SK와 SK C&C의 합병에서도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했다.

합병에 반대하는 측은 합병 비율이 부당하게 책정됐다고 주장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대하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주장이 그렇고, SK와 SK C&C의 합병에 반대했던 국민연금도 비슷한 논리를 펼쳤다.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나 SK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SK나 삼성 측은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정해진 것으로 합병에 문제가 없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 합병비율에 따라 손익 크게 엇갈려

합병비율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은 이유는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히기 때문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서 합병비율이 낮으면 낮을수록 제일 모직에게 유리하다. 합병비율이 1:0.50으로 올라가면 삼성물산의 주식 100주를 제일모직의 주식 50주로 바꿔줘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삼성물산 주주 입장에서는 1:0.35의 합병 비율보단 1:0.50의 비율이 더 유리하다. 더 많은 주식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상장사간 합병의 경우

상장사끼리의 합병은 그래도 잡음이 덜 한 편이다. ‘주가’ 라는 공정 가치(fair value)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주가를 공정 가치라고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사고 파는 과정에서 기업의 적정 가치가 정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이사회의 합병 결의 하루 전과 일주일 전, 한달 전의 주가를 가중평균해서 합병 비율을 정한다.

이렇게 결정된 합병 비율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될 경우, 일정 범위 안에서 비율을 조정할 수도 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합병 비율은 계열사의 경우 10%, 비계열사의 경우 30%까지 조정할 수 있다. 합병비율을 조정할 지 여부는 회사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하지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는 상장사이기 때문에 오히려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주주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주가가 기업의 상황보다 저평가됐기 때문에, 삼성물산이 가진 다른 회사의 주식이나, 부동산 가치 등 유형자산의 가치를 반영해서 합병비율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상장사의 합병 기준을 주가로만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비상장사와 상장사의 합병 경우

상장사와 비상장사간 합병의 경우는 그 과정이 더 복잡하다. 주식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아 주가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산의 가치, 향후 얼마나 돈을 벌어 들일 수 있을 지를 나타내는 수익 가치, 유사한 사업을 하는 상장 회사들의 주가를 고려한 상대 가치 등을 종합해 비상자사의 주가를 결정하게 된다.

한 회계법인의 회계사는 “비상장사의 가치를 산정할 때는 회계법인이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합병비율이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