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값이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돼지 설사병과 구제역이 유행하면서 시중에 출하되는 돼지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달 초 폴란드에서 돼지콜레라가 창궐, 수많은 돼지가 죽거나 살처분되면서 동유럽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

가축의 질병 대책도 사람처럼 백신과 항생제가 핵심이다. 하지만 백신과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가축 질병이 잇따라 등장하자 과학자들은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유전자 변형(Genetic Modification·GM)을 통해 질병에 걸리지 않는 가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질병 예방 외에도 일반적인 가축보다 빨리 자라거나 육질이 좋은 가축도 실험실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콜레라에 걸리지 않는 돼지

영국 에든버러대 연구 시설에서는 이달 초 새끼 돼지 수십 마리가 태어났다. 이 돼지들의 부모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육되는 라지화이트(요크셔)종이다. 하지만 부모와는 달리 돼지콜레라(돼지열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에든버러대 연구팀은 2012년 돼지의 유전자 전체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돼지콜레라균과 반응하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연구팀의 브루스 화이트로 교수는 "요크셔 돼지의 수정란에서 돼지콜레라의 원인 유전자를 잘라낸 뒤, 그 부분을 돼지 콜레라에 걸리지 않는 혹멧돼지의 유전자로 바꿔 끼웠다"면서 "이렇게 태어난 돼지는 돼지콜레라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요크셔 돼지와 똑같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새끼 돼지들이 자라면 유럽 전역의 가축 연구소에 보급, 식용으로 적합한지를 검증할 계획이다.

미국 바이오 기업 아쿠아바운티는 2012년 유전자를 변형해 일반 연어보다 2배 이상 빨리 자라는 연어를 만들어냈다. 이 연어는 성장 속도가 빠른 장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기존 연어가 걸리는 질병에도 강한 것이 특징이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최근 이 연어의 양식을 허용했다. 현재 파나마의 가두리양식장에서 유전자 변형 연어들이 자라고 있다.

이 밖에 조류인플루엔자(AI)에 걸리지 않는 닭,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 '오메가3'를 갖고 있는 돼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성분인 '베타-락토글로불린'이 없는 우유만 생산하는 암소도 개발됐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수의대 장구 교수팀이 한우의 근육량을 키워 육질을 좋게 하는 '코리안 블루' 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식지 않는 안전성 논란

유전자 변형은 식물에서는 이미 일반적이다. 화학 기업 몬산토, 듀폰, 바스프 등은 유전자 변형을 통해 가뭄에 잘 자라고 질병에 걸리지 않는 콩, 옥수수, 벼를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 농지 면적의 13%에서 GM 농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한국에도 지난해 식품 원료와 사료용으로 1082만t이 수입됐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식물은 감자다. 감자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사랑받는 식량원이다. 하지만 감자의 병충해를 막기 위해 사용하던 농약들이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잇따라 사용 금지되면서 점차 질병에 대항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는 감자 역병과 감자 선충 등에 내성을 가진 GM 감자를 개발하고 있다.

가축 질병, 작물 병충해와 싸워야 하는 농부들은 한 가지 거대한 장벽만 해결되면 유전자 변형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바로 안전성 논란이다. GM 기술이 식물에 적용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이런 작물을 사람이 먹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는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상당수 과학자는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면 이제는 안전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이런 말로 일반인을 설득하기엔 부족하다.

GM 돼지를 탄생시킨 화이트로 교수는 "우리가 개발한 돼지가 유전자를 변형했다는 것을 알면 누구도 사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부분의 국가가 GM 동물에 대해서는 법적인 제도조차 만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