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사진가의 ‘읽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전체 가로 길이가 3미터가 넘는 대형 사진이다.

사진만의, 사진다운 말하기 방법은 무엇일까? 몇 회 전 글에서 반 고흐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모든 예술 장르가 그렇다. 좋은 소설 안에는 소설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담겨 있고, 좋은 회화에는 회화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사진도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한다.

그런데! ‘사진의 말하기는 거짓말하기’라고 하는 작가들이 모여 전시회를 한다기에 가서 봤다. 평창동의 토탈 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거짓말의 거짓말 : 사진에 관하여’이다. 작가들이 18명이나 모였다. ‘사진은 거짓말을 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사진가들이 그만큼씩이나 모이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이들의 발언 수위를 따져봤다. 어떤 발언은 ‘거짓말도 할 줄 안다’를 넘어선다. ‘거짓말이 더 재미있잖아?’ 정도도 얌전한 편이다. ‘거짓말만이 사진의 유일한 대화 법’이라는 작가도 있었고, 아예 ‘세상에 진실이라는 게 어디 있니?’라고 묻는 작가도 있고, 사진이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작가도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들 중 몇 개만 들어보자. 사진이 대화 수단으로 불완전함을 보이려는 작가들로는 백승우와 장보윤이 있다. 백승우는 벼룩시장 같은 데서 수집한 사진 수 백 장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그들에게 이야기를 구성해보라고 주문했다.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꾸며서 가져왔다. 우리가 예전 글에서 보았던 박종근의 전시와 비슷하다. 사진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사진에 고정된 의미는 없다.

권오상 사진가의 ‘메타보 2009’. 사진을 찍어서 만든 조각이다.

권오상 작가는 사진 조각이라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사람을 모든 방향에서 사진 찍은 뒤, 그 사진들로 다시 사람을 재조립한다. 삼차원인 사람을 이차원인 사진으로 찍어 다시 삼차원의 조각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엉뚱한 것이 돼버린다. 사진으로 다시 실제를 구성하려고 노력해봤자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정연두 사진가의 ‘Drive in Theatre’. 자동차에 올라타면 앞 화면에 영상이 흐른다.

전시장에서 가장 인기를 끈 정연두의 작품은 마치 영화세트장 같다. 자동차 안에 앉으면 한 쪽에 배경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촬영이 시작된다. 촬영되는 것이 동시에 정면 스크린에 비치는데, 정말 차를 타고 달리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보고 느낀다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고 있다.

정희승 사진가의 ‘Unfinished Sentence 1’. 일상의 풍경을 낯설게 만들었다.

그래, 사진이란 것이 그렇다고 치자. 그럼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한다는 건가? 사진은 어떤 모양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가들이 있었다. 정희승의 사진은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풍경을 소재로 하고 있다. 흔한 소재가 재미있는 사진이 됐다.

진짜 심각한 쪽은 소위 다큐멘터리를 하는 작가들이다. 다른 작가들이 사진에 대해 비평을 하는 동안, 다큐멘터리 작가들은 ‘그래도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시장에는 노순택과 박진영이 있었다. 노순택의 사진은 무엇을 말하는지 첫눈에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눈 덮힌 자동차 모습이다.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라는 제목을 듣고 나면, 혹시 하는 생각이 든다.

연평도가 북한의 포격을 받은 후, 정치인들이 찾아가 불에 탄 보온병을 들고 포탄 탄피라고 말했던 장면에서 따온 제목이다. 연평도 사건 이후 우리가 흔하게 보았던 무너진 집과 깨진 창문 그을린 벽은 전혀 없지만, 노순택은 보는 이들을 교묘하게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전시장의 맨 입구에는 구본창 선생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쓰고 남은 비누 조각들 사진이다. 무슨 보석인 줄 알았다. 보석이나 희귀한 광물을 찍듯이 정교하게 찍은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걸어 놓았다. 깔끔한 액자에 담겼고 미술관의 흰 벽에 걸려있다.

구본창 사진가의 ‘soap 09’. 쓰다 남은 비누를 정교하게 찍었다.

이게 거짓말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집에서 쓰던 비누인 것이다. 소재가 비누인 덕분에 우리는 쉽게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상상해볼 수 있다. 작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보는 이들이 생각한다.

토론을 이어 나가려면, 다른 입장에 있는 사진가들, 그러니까 사진은 기록이며 사실을 전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야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작가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매체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별로 안한다.) 나중으로 미뤄 두자. 이번 글에서는 여기까지다. 단, 18명의 작가들과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들이 ‘사진만의 사진다운 말하기는 거짓말하기’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은 기억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