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8일 한국GM 부평공장 3층 대회의실. 올 4월부터 임단협 협상을 하고 있는 이 회사 노사가 한자리에 모여 제9차 임금 협상을 시작했다. 노조 측은 임금 15만9900원 인상, 성과급 500% 지급(약 1300만원) 등의 요구 조건을 반복했다. 경영진은 “지난해 매출이 2조여원 줄었고 수천억원의 영업 적자를 낸 상황에서 최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까지 겹쳤다. 노조 측의 요구가 너무 과다하다”고 조건을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협상은 두 시간도 걸리지 않은 채 끝났다. 이튿날인 19일. 노조 간부와 대의원이 모인 ‘노조 확대간부회의’는 만장일치로 쟁의 조정신청(爭議調整申請)을 결의했다. 회사 고위 관계자는 “노조가 이번 주중 중앙노동위에 쟁의조정신청을 내고 본격 파업 준비에 들어가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가 하투(夏鬪)에 돌입했다. 한국GM은 물론 현대차, 르노삼성, 쌍용차 등이 줄줄이 임금 협상을 벌이고 있고 기아차도 곧 협상에 들어간다. 올해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글로벌 경쟁 과열에다 환율 문제까지 겹치면서 대부분 매출이 급감했다. 영업이익도 줄거나 손실을 기록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상당수 노조가 큰 폭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어 노사 갈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1500억원 적자인데 성과급 500% 요구

한국GM은 지난해 매출액 12조9182억원을 올렸다. 전년 대비 2조6857억원(17%)이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1486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노조는 민주노총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내놓은 임금 15만9900원 인상 요구안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적자 상황인데도 성과급 500%(상여 지급 기준·약 1300만원)를 요구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노조가 제시한 임금 인상분과 성과급까지 반영하면 연봉이 15% 정도 올라간다“며 “성과급은 회사가 돈을 벌었을 때 나오는 얘기인데, 지금 노조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조 측은 “물가 상승률과 최근 2년간의 임금 감소 등을 고려할 때 경영진은 실적 타령만 할 게 아니라 임금 인상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는 ‘GM의 한국 철수설’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한국GM이 구조조정 전문가로 알려진 외국계 IT 기업 사장 출신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영입하자, 한국 철수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GM 관계자는 “GM이 한국을 떠나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는 100% 동의하지만, 노조의 행태를 보면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원은 “우리 완성차 업체들은 환율을 등에 업은 일본·유럽 차의 공세에다 신흥 시장의 위축이란 악재에 직면해 있다”며 “노사가 힘을 모아 임금 인상을 최소화하면서 생산성 향상에 매진해야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도 임금 협상 돌입

자동차 노조의 ‘맏형’인 현대차도 최근 임금 협상을 시작했다. 한국GM과 같은 임금 15만9900원 인상에다 당기순이익 30%에 해당하는 성과급 지급,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상에서 현대차 노조는 요구안을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노조집행부가 협상안이 미리 알려져 소모전을 치르지 않겠다는 취지로 요구안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노사는 분위기가 심상찮다. 이달 22일 현대차 전주 상용차 공장에서 생산 물량 조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노조원과 사측 간에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현대차 상용사업본부장(부사장)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진했다.

2009년 파업 사태 이후 민노총을 탈퇴한 쌍용차는 올해 기본급 11만7985원 인상을 요구하면서 5 차 협상을 진행 중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최근 5년 연속 무분규로 타결을 해온 만큼 올해도 조속한 타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닛산 로그’ 생산 물량을 부산 공장에 유치해 지난해 매출이 늘어난 르노삼성은 이달 22일부터 임금 협상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