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신뢰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 자신 참담한 심정입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를 했다. 메르스(MERS, 중동호홉기증후군) 확산 과정에서 삼성서울병원이 진원지가 된 것에 대한 사과였다. 이 부회장은 두 차례나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이 부회장은 삼성서울병원을 관장하고 있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삼성그룹 오너 경영인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직접 한 것은 이례적이다. 가장 최근에는 이건회 회장이 2008년 삼성 특검 수사에 대한 유감 의사를 대국민 사과 형식으로 표명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5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 등으로 입원한 이후 사실상 삼성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사과 시기도 예상보다 빨랐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이 직접 사과를 하기로 결심했더라도, 시기는 정부가 메르스 종식 선언을 한 이후가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재계 관계자들의 관측이었다.

◆ 이 부회장 대국민 사과 자청…”삼성이 느끼는 책임감 보여준 것”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3일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산 진원지 중 하나가 된 데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두 차례 연단에서 나와 허리를 숙여 사과를 표시했다.

이 부회장이 자청한 이날 기자회견은 삼성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관계자들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를 정도로 조용하고 신속하게 추진됐다.

지난 17일 삼성 사장단의 유감 표명이 이뤄진 후 18일 이재용 부회장이 전격적으로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해 환자 치료에 애쓰고 있는 의료진을 위로하고, 메르스 대책본부 관계자들을 만나 유감의 뜻을 전했다. 이 때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발빠른 행보는 메르스 사태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지만, 삼성서울병원발(發) 메르스 확산으로 인해 국민들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 등 삼성 최고위층이 발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라는 게 재계의 인식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이 자랑하는 국내 최고 의료시설인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사실에 대한 이 부회장 등 삼성 최고위층의 충격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병원 의료체계의 대대적인 혁신을 약속한 것도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실망감을 나타냈다는 해석이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한 삼성이 느끼는 엄중한 책임감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면서 “메르스 사태 해결을 위해 삼성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표명”이라고 말했다.

◆ 정치권 압박 속 ‘위기 의식’ 발동한 듯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 특유의 위기 의식이 발휘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확산에 대한 정부 조사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병원장이 공식 사과를 하고 병원 부분폐쇄 결정를 내렸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18일 삼성서울병원 내 민관합동 메르스대책본부를 찾아 메르스 확산을 제대로 방지하지 못한 점을 사과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있었다. 국민들에게 사과를 한 것이 아니라 당국자들에게 사과한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이재용 부회장 책임론를 거론하기도 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이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직접 사과를 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영선 의원도 “삼성생명공익재단이 100% 소유하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이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초등대처 실패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나면서 이재용 회장이 직접 사과를 나서기로 결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이 부회장의 사과에 대해 논평을 내고 “이른바 대한민국 최고 병원이 속한 그룹의 실질적 대표가 국민을 향해 사죄하는 모습을 보는 국민의 마음은 편치 못하다"면서 “하루하루 맘 졸이며 불안에 떨고 있는 실망한 국민들의 마음을 안심시키고 보듬을 수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가 너무나 절실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