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엘리엇, 왜 삼성 지배구조까지 들먹이나

엘리엇과 같이 경영 전략 변경, 사업부 매각이나 분사 등 구조조정, 지배구조 개편 등을 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펀드를 ‘행동주의 펀드’라고 부른다. 이들은 최근 몇 년간 미국·유럽 등 선진국 금융 시장에서 급격히 세를 불린 뒤, 일본·홍콩 등 아시아 지역으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

엘리엇은 18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를 위해 만든 웹사이트(fairdealforsct.com)에 게재한 합병 반대 자료에서 삼성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 및 순환출자 문제까지 거론하면서 삼성을 비판했다.

행동주의 펀드는 여러 가지 점으로 인해 저평가 되어있는 기업의 주식을 매입한 뒤, 평소 불만을 갖고 있던 다른 주주들을 규합해 대주주와 경영진을 압박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이점에서 다수 지분을 매입해 경영에 참여한 뒤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사모펀드(PEF)와 다르다.

비교적 적은 지분만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여타 주주들의 집단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주주들에게 설득력 있는 ‘명분’과 경영진과 정면 대결도 감내할 수 있는 ‘실리’를 제시해야 한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소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소송을 통해 대주주의 발목을 잡는 것 뿐만 아니라, 소송 과정이 알려지면서 다른 주주들에게 해당 기업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선전할 기회를 잡겠다는 것이다. 엘리엇이 지속적으로 삼성물산을 상대로 여러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하면서 삼성 그룹의 지배구조 전반을 공격하는 것도 ‘여론전’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엘리엇은 미국 의결권 자문 업체인 ISS에 제출한 문건에서 삼성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순환출자 구조까지 싸잡아 공격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을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한국 특유의 기업 소유 구조의 맹점을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삼성물산 변호를 맡고 있는 김용상 김앤장 변호사가 1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물산 주주총회 금지 가처분 신청 공개 심리를 마치고 질의에 답하고 있다.

⑥삼성과 엘리엇의 대결…누가 대리하나

엘리엇은 김앤장 출신인 최영익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넥서스를, 삼성물산은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김앤장 출신과 김앤장 현직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 간 대결인 셈이다.

최영익 넥서스 대표변호사는 사법연수원 17기로 1991년부터 2000년까지 9년간 김앤장에 있다가, 2000년 법무법인 우일을 설립했다. 법무법인 우일은 2004년 법무법인 아이비씨를 합병해 법무법인 우일아이비씨로 바뀐다. 최 변호사는 2004년 영국계 펀드 헤르메스가 삼성물산(028260)지분을 취득한 뒤 삼성 측과 경영권 분쟁을 벌일 때 법률 대리를 맡았다. 그는 우일을 떠나 리인터내셔날법률사무소, 넥서스 등의 대표 변호사를 맡았다. 총리 후보였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의 사위로도 유명하다.

넥서스 내 M&A 팀 소속 변호사 여러 명도 2004년 당시 최 변호사와 함께 헤르메스 법률 대리 업무를 했다. 이밖에도 이번 소송에 함께 참여하는 박혜준 변호사는 2002년 엘리엇의 자회사 맨체스터시큐리티가 삼성전자(005930)가 우선주의 보통주 자동 전환 규정을 정관서 삭제한 데 대한 소송에서 법률 대리를 하기도 했다. 대형 로펌이 꺼리는 국내 대기업 상대 소송을 오랫동안 대신 맡은 전문성있는 팀인 셈이다.

김앤장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상고심 변론을 맡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김용상(사법연수원 17기) 변호사가 법률 대응을 지휘하고 있다. 김앤장은 이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에서 법률 자문을 맡았다. 이밖에도 2013년 사모펀드(PEF)인 MBK파트너스의 ING생명 인수 등을 자문해준 기업 인수합병(M&A) 분야 전문가인 임신권 변호사가 핵심 실무 인력으로 거론된다.

11일 삼성물산은 보유한 자사주 모두를 KCC에 매각했다. KCC가 지분 6.0% 가량을 보유하면서 삼성전자 우호 지분은 19.8%로 증가했다. 국내 기관 지분은 팩트셋에 집계된 지분을 합산했다.

⑦삼성의 방패는 엘리엇의 창을 막아낼 수 있나

삼성은 엘리엇의 공격을 전력을 다해 막을 태세다. 앞으로 여러 차례 진행될 다른 계열사 재편에서 외부 세력이 발목을 잡는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룹 지배구조를 단순화 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삼성전자 지분 4.1% 등 삼성물산 보유 지분을 제일모직 산하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것도 삼성그룹의 핵심 목표다.

원래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 당분간 큰 규모의 계열사 재편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었다. 한 삼성 고위 임원은 엘리엇과의 분쟁 직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 메이저(대형) 이벤트가 계획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삼성이 가장 신경 쓴 것은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승계”라고 덧붙였다. 삼성 입장에서 계열사 재편보다 이재용 부회장이 성공적으로 그룹 대표로 안착하느냐를 후계 승계의 핵심 과제로 본 셈이다.

“무리하게 계열사를 합치거나 상속세를 아끼기 위해 ‘꼼수’를 두는 일도 없을 것”이 그간 삼성 그룹 핵심 관계자들의 입장이기도 했다. 다음달 삼성물산 주주총회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엘리엇을 상대로 여유있는 대응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삼성의 대응 가운데 가장 중요했던 행동은 11일 삼성물산이 갖고 있던 자사주 5.94%를 전부 우호 세력인 KCC에 매각한 것이다. 다음달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11일까지 주식을 매입하여야 한다.

KCC를 끌어들이면서 삼성은 계열사와 오너 일가 지분 13.83%에 KCC 지분 5.96%를 합쳐 19.79%를 확보하게 됐다. 반면 엘리엇의 실질 지분은 7.56%에서 7.12%로 줄었다. 20%에 육박하는 지분을 확보하면서 다른 주주들을 상대한 설득 작업에 힘이 붙게 된 것도 또 다른 이점이다.

삼성은 또 17일 골드만삭스와 크레딧스위스(CS)를 합병 자문사로 선정했다. 기업 인수합병(M&A)에서 자문사는 합병 가격 산정, 금융 비용 조달, 법률적 조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합병 결정이 끝난 뒤 자문계약을 맺는 것은 드문 일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삼성이 이들 투자은행(IB)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투자자 설득에 나서기 위해서 자문사를 선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IB는 계열사로 자산운용사를 두고 있기도 하다.

삼성은 지난해 각 계열사 법무팀 인력을 대상으로 인수·합병(M&A)과 관련된 집체 교육을 실시하는 등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엘리엇의 공격을 포착해내지 못했다.

⑧삼성, 엘리엇 공격 눈치 못챘나

삼성은 엘리엇이 대량의 지분을 취득해 경영권 개입을 시도하리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삼성물산은 4월까지 엘리엇으로부터 합병계획이 있냐는 문의를 받았지만, 미래전략실 등 그룹 수뇌부로 보고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삼성 고위 관계자들은 엘리엇 사태 발생 직전만 해도 이에 대해 감지하지 못하고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등 다른 문제에 몰두하고 있었다.

19일 엘리엇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공개 심리에서 엘리엇을 대리한 법무법인 넥서스의 최영익 변호사는 “엘리엇은 지난 4월 9일 한 삼성물산 고위 임원에게 합병 계획에 대해 질의했다”며 “합병 계획이 없고 고려하지 않는다는 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삼성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김앤장의 김용상 변호사는 “당시 질의에 대해 포괄적인 설명을 했을 뿐”이라며 “이후 경영 계획이 심각하게 바뀌거나 그러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삼성물산은 여러 차례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향후 합병 계획에 대한 질의를 받았었다”며 “그 중 하나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엘리엇이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행동주의 펀드임에도 불구하고 ‘공격 징후’를 놓치면서 기습을 허용한 것은 ‘관리의 삼성’답지 않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중론이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삼성경제연구소 내에 금융지배구조를 전담하는 별도 팀이 몇 년째 관련 작업을 하고 있다”며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가정한 대응 시나리오를 작성해놨을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KCC로의 자사주 매각 등도 대응 계획 중의 일부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