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던 삼성그룹에 커다란 장애물이 나타났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반대하고 나선 것. 엘리엇은 과연 어떤 이들이고, 이들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의 공격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삼성은 예정된 길을 갈 수 있을까? 재계와 투자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12가지를 꼽아 해법을 풀어봤다. [편집자주]

6월4일 목요일 오전 7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웹사이트에는 삼성물산(028260)의 ‘주식 등의 대량확인보고서’가 게재됐다.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이 삼성물산 보통주 1112만5927주를 매입했다는 내용이었다. 자사주를 제외한 엘리엇의 지분율은 7.55%. 취득 목적은 ‘경영참가’였다.

삼성 계열사 재편의 핵심 과정 가운데 하나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정면에서 가로막고 나선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폴 싱어 회장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왼쪽부터)

1시간 뒤 엘리엇은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 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으며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 주식 전량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두 회사를 합병시키겠다는 삼성의 계획에 도전하겠다는 것이었다.

삼성물산은 다음달 17일 주주총회를 통해 합병을 결의한다. 주주총회를 한 달 반 남기고 삼성과 엘리엇은 주주들과 여론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두 진영의 논리, 이해관계, 향후 전략 등 핵심 쟁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봤다.

① 엘리엇의 요구는?

삼성물산은 제일모직보다 매출과 자산이 많지만, 19일 현재 시가 총액은 38% 수준에 불과하다. 건설산업의 침체와 삼성그룹 지배구조 재편에 제일모직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엘리엇은 성명 발표 다음 날인 5일 주요 주주들에게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서한을 보냈다. 삼성물산을 상대로는 현물 배당을 할 수 있도록 정관 개정을 요구하는 제안서를 전했다.

9일에는 삼성물산 주주총회를 열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삼성물산이 자사주를 KCC에 매각하자 이에 대응해 12일 자사주 매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엘리엇이 제기한 두 가처분 소송은 19일 공개 심리를 진행했으며, 다음달 1일 법원의 판결을 받는다.

엘리엇 논리의 핵심은 지금의 합병 비율은 지나치게 삼성물산에게 불리하며 이는 삼성물산 이사들이 주주 이해가 아니라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이해 관계를 더 고려했기 때문이고 현재 이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니,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산을 주주들에게 나눠달라는 것이다.

엘리엇은 한영회계법인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적정가치 산출을 의뢰한 결과 삼성물산은 주당 10만597~11만4134원, 제일모직은 6만3353~6만9942원 정도가 실제 가치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0.35(삼성물산)대 1(제일모직)이 아니라, 1.6대 1로 합병 비율을 대폭 조정해야한다는 것이 엘리엇의 요구다. 현재 합병 비율보다 4.6배 정도 삼성물산의 가치를 더 쳐달라는 얘기인 셈이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최근 주가가 실제 가치를 반영하고 있지 못한 반면, 제일모직 주가는 과대 평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엘리엇은 미국 의결권 자문 업체인 ISS에 보낸 서한에서 “제일모직 주가는 (제일모직) 주주들에게 큰 이익이 될 삼성물산과의 불공정한 합병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 기초하여 합당하지 않은 수준까지 올라갔다”고 주장했다.

②삼성물산 과연 저평가 돼 있나?

지난해 제일모직 상장일부터 합병 발표 직전까지 제일모직은 큰 폭으로 오른 반면 삼성물산은 10% 가량 하락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합병 비율을 합병 결정 이전 주가를 기준으로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제176조의 5)에 따르면 상장사끼리 합병 비율은 각 사 합병 결의 직전 최근 1개월 평균 종가, 1주일 평균 종가, 최근일 종가를 산술평균해 산정하도록 했다. 여기에 비계열사는 30%, 계열사는 10% 선에서 소폭 조정할 수 있는 게 전부다.

이 규정은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사람이 참여해 결정된 주가가 회사의 가치를 반영하는 기준이라는 판단을 전제로 한다. 합병 당시 이해당사자들이 임의로 주식 가치를 산정하는 것보다 불특정 다수가 참여한 증권시장에서 매겨진 가격이 두 회사의 진짜 가치에 가깝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엘리엇 사태 이전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싼 논란은 ‘합병이 현행 법규를 위반했느냐’는 것보다 ‘삼성이 대주주의 지위를 이용, 삼성물산 주가가 낮아지도록 유도한 것이 아니냐’는 게 방점이 찍혀 있었다.

삼성물산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그간의 부실을 회계장부에 반영하고, 국내 건설 사업 수주를 줄이는 등 일련의 구조조정 행보를 펼친 것이 그 근거였다. 지난해 12월 18일 제일모직 상장일부터 합병 결의 거래일까지 제일모직 주가는 44.7% 오른 반면, 삼성물산 주가는 10.8% 하락했다.

현행 법규 하에서 엘리엇이 합병 비율 재산정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다음 달 17일 주주총회를 무산시키고, 다시 합병을 추진케 해야 한다. 다음달 1일 판결이 나오는 가처분 소송에서 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호 세력을 확보해 삼성과 표 대결 양상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셈이다.

③엘리엇, 삼성물산 보유 계열사 지분 노렸나?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6%, 삼성SDS 지분 17.08% 등을 보유하고 있다. 상장된 계열사 지분가치면 11조7100억원에 달한다.

삼성물산이 가지고 있는 계열사 지분에도 엘리엇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실제 삼성물산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은 상장사만 따져도 전체 자산의 절반에 육박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4.06%, 삼성SDS 17.08%, 제일기획(030000)12.64%, 삼성엔지니어링7.81%, 삼성정밀화학5.59%, 제일모직 1.37%, 삼성바이오로직스 5.75% 등의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다. 1분기 보고서 기준인 3월말 기준으로 상장사들의 지분 가치는 총 12조95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005930)(8조6100억원), 삼성SDS(3조5300억원)가 핵심이다. 자산 26조1600억원(별도재무제표 기준) 가운데 49.5%가 상장된 계열사 지분가치인 셈이다. 특히 삼성전자 지분은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엘리엇은 삼성물산에 대한 공격이 성공해 삼성을 수세로 몰아갈 경우, 잃을 게 많은 삼성이 적잖은 양보를 할 것이라는 계산을 사전에 했을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이 다른 건설사와 비교해 저평가 되어있다”고 주장을 펴왔고,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GS건설(006360), 대림산업등 다른 국내 건설사와 비슷한 PBR(주가순자산비율)”이라고 반박해왔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저평가 근거 중 하나가 바로 계열사 지분 보유 가치다. 엘리엇은 이에 “삼성전자 지분 등 보유 계열사 지분을 주주들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는 실제로 삼성전자 주식을 받아내겠다는 것보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가치를 이슈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④엘리엇, 성공 가능성 높게 본 이유는?

지난 1년간 외국인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 비율은 10%포인트 가량 증가했다. 엘리엇을 제외해도 3%포인트 정도 외국인 비중이 늘어난 셈이다.

엘리엇의 공격 직전인 3일 기준, 삼성물산은 삼성SDI(7.39%·보통주 기준), 삼성화재(4.79%), 이건희 회장(1.41%) 등이 총 13.8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외국인 지분율은 32.11%였다.

삼성물산이 엘리엇의 타깃이 된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상대적으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취약하고, 외국인 비중은 높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외국인들의 삼성물산 지분 보유량은 크게 늘었다. 합병 발표 1년 전인 2014년 5월 26일 현재 외국인 지분율은 24.18%에 불과했지만, 합병 발표 당일엔 34.01%까지 높아졌다. 엘리엇의 주식 보유량을 제외하더라도 외국인 지분이 3%포인트 가깝게 늘어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