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왼쪽)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서울시내 면세점 후보지로 선정한 용산 아이파크몰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상당히 이질적인 조합이네요.”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 국내 재개를 대표하는 삼성가(家)와 현대가가 시내면세점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손을 잡을 것을 두고 한 유통업계 관계자가 처음 내밷은 말이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올 5월 25일 HDC신라면세점 출범식에 참석한 뒤 용산 아이파크몰 매장을 둘러봤다. HDC신라면세점측은 급하게 이 두사람이 나온 사진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언론사에 뿌렸다. 어울리지 않는 두 오너가 한 프레임에 잡힌 이 사진은 유통업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면세점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두 기업의 오너가 손을 잡았다는 것은 그 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번 합작을 통해 호텔신라는 과점 논란을, 현대산업개발은 면세점 운영 경험이 없다는 약점을 서로 보완하는 ‘신의 한 수’란 반응이 많다. HDC신라면세점은 6만5000㎡의 면적에 한류관광과 쇼핑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DF(Duty Free)랜드를 만든다. 도심형 면세점 중에서는 세계 최대 크기다.

그럼에도 불구 HDC신라면세점이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용산아이파크몰이라는 입지와 호텔신라의 면세점 과점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 인근 상인 큰 기대 안해…관광식당 들어서는 것 부담

지난 15일 정오에 찾은 HDC신라면세점 시내면세점 후보지인 용산 아이파크몰. 아이파크 광장에는 용산역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쉴 틈 없이 오갔다. 그러나 아이파크몰 내부에는 물건을 사러 온 손님이 거의 없었다. 상인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매대 정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가끔씩 손님들이 물건을 사는 모습이 오히려 어색하게 보일 정도였다.

인근 상가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용산역사에만 사람이 붐비고 상권은 거의 쇠락한 분위기다. 인근에 특별한 관광지도 없어 외국인 관광객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HDC신라면세점은 용산 전자상가의 낡은 시설 개·보수도 지원해 용산 지역 상권에 활성화한다는 상생안도 마련했지만 상인들은 아이파크몰에 면세점이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용산역사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유모씨는 “아이파크에 면세점이 들어오는 것과 우리 가게 손님이 늘어오는 것은 별개일 것”이라며 “조금이야 영향이 있겠지만, 큰 변화는 없을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파크몰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중인 문모씨는 “주로 전자상가나 아이파크 인근 직장인들이 회식자리를 겸해 많이 찾아왔었다”며 “면세점이 들어서면서 관광식당이 함께 조성한다는데 그렇게 되면 손님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아이파크몰의 경우 중국 단체관광객들을 타깃으로 한다. 중국 단체관광객들은 면세점에서 2시간 정도 쇼핑을 하고 버스를 타고 다른 코스로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변 상인들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패키지 관광객 특성상 빠듯하게 면세점 쇼핑만 하고 떠나게 될 것이란 얘기다.

HDC신라면세점 옥외주차장 부지.

HDC신라면세점은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인근에 옥외주차장의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 경우 주차 가능 관광버스는 약 200대에서 400대로 늘어나게 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문제는 주차장 공간은 다른 경쟁사 후보지보다 양호하지만 인근 도로가 완전히 정비되지 않았다. 실제 좁은 신용산지하차도와 인근 진입로는 주상복합공사 등으로 사정은 그다지 좋지 못한 상태다.

◆ 여전히 말이 많은 과점 논란

관세청이 마련한 보세판매장 심사 평가표를 보면 합계 1000점 가운데 경영능력(300점)과 관리역량(250점)이 절반 이상이다. 이 부분으로만 보면 HDC신라면세점은 단연 선두권으로 올라서게 된다.

그러나 HDC신라면세점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호텔신라의 과점 논란이 그것이다. 이 부분을 심사위원들에게 어떻게 설득할 지에 따라 HDC신라면세점의 당락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애초 관세청이 지난해부터 5년마다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경쟁 입찰에 부치기로 정책을 바꾼 것은 대기업의 독과점을 막기 위해서였다. 국내 면세점 시장 80%를 차지하는 롯데와 신라가 다시 사업권을 따게 된다면 다시금 독과점 이슈가 불거지는 것은 자명하다.

용산 아이파크몰 전경.

현재 6곳인 서울 시내 면세점은 호텔롯데가 3곳, 호텔신라가 1곳을 운영하고 있고 2곳인 제주시내 면세점은 호텔롯데와 호텔신라가 각각 1개씩 보유하고 있다. 호텔신라는 여기에 광화문 동화면세점 지분을 19.9% 갖고 있다.

호텔신라는 2011년 1조5018억원에서 2012년 1조9018억원, 2013년 2조863억원, 2014년 2조6121억원으로 급증세를 보였다. 이 기간 호텔신라는 413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업계에서는 HDC신라면세점이 시내면세점 특허(특별허가)를 받게 되면 이들 호텔신라와 롯데가 두 개 업체의 면세점시장 점유율이 9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울이라는 알짜배기 지역에 면세점 영업권을 주는 만큼 점유율이 급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HDC신라면세점은 면세점 규모와 상생안으로 승부를 봐야하는데 계속해서 과점 논란이 불거지는 것이 억울할 수 있다”며 “심사위원들도 정치권에서 기존 사업자의 특허 획득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어 과점 이슈가 심사에 부담될 것”이라고 말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호텔신라의 시내면세점 점유율은 25% 수준”이라며 “면세사업을 다른 기업들이 포기하면서 점유율이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면세점 하나로 뭉친 이질적 조합

합작회사라는 부분이 면세점 경영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현대와 삼성은 국내를 대표하는 기업이기도 하지만 기업 문화가 확연하게 다르다. 이 때문에 의사결정이나 면세점 운영에서 엇박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한쪽에서 주도권을 가져야 하는데 정확히 절반씩 나눠진 지분 구조 때문에 신속한 의사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HDC신라면세점 대표이사도 양창훈 현대아이파크몰 사장과 한인규 호텔신라 운영총괄 부사장 공동대표 체제다.

면세점 업계 한 관계자는 “입지나 규모, 상생방안 등 모두 빠질 것이 없는 유력한 곳이지만, 어느 한 곳이 주도하지 않는 합작법인이라 면세점 경영진 입장에서는 양측의 눈치를 모두 봐야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