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 확보를 위한 삼성전자(005930)의 광폭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글로벌 IT 업체들에 비해 투자나 인수합병(M&A)에 보수적으로 접근했지만, 최근에는 기술 확보나 협력을 위한 외부 수혈에 거리낌이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 15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사물인터넷(IoT) 관련 통신장비-기술 개발 벤처회사 시그폭스(Sigfox)와 지분 투자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시그폭스는 IoT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로 꼽힌다. IoT에 특화한 저비용 저전력 광대역 무선 통신 서비스를 전문으로 한다. IoT용 통신망을 저렴하고, 보다 넓은 지역에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미래 유망 사업으로 꼽히는 스마트카 사업에도 투자했다. 미국의 스마트카 기술업체 빈리(Vinli)는 8일(현지 시각) 삼성의 투자전문업체 삼성벤처투자와 자동차 관련 기업 콕스오토모티브·웨스틀리그룹·콘티넨털 등으로부터 총 650만달러(약 72억8000만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빈리는 무선통신 기능이 없는 구형 자동차에 네트워크 연결 기능을 제공해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온라인과 연계해 쓸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한다. 빈리의 장치만으로 스마트카로 변신하는 셈이다. 또한 빈리는 인근 주차장의 위치를 찾아주거나 10대 자녀가 운전하고 있는 경로를 추적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지난해 9월에는 갤럭시S6에 넣을 신무기인 모바일 결제 서비스 '삼성페이'를 위해 미국 신생 회사인 루프페이를 인수했다. 인수는 3개월 만에 진행됐고, 2000억원 이상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이런 행보는 내부에서 키워 수직계열화해왔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삼성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룹 내에서 필요한 기술을 육성해왔다.

과감하고 빠른 투자 결정에는 미국 실리콘밸리 현지에 설립한 '삼성전략혁신센터(SSIC)'가 있다. 시그폭스, 빈리 투자 결정을 모두 주도했다. SSIC는 삼성전자의 핵심 기술 경쟁력, 지적재산권(IP) 관리, 확보에 주력하는 조직이다.

SSIC를 이끄는 수장은 손영권 사장(사진)이다. 손 사장은 그레고리 리 삼성전자 미국법인 최고경영자(CEO)를 제외하고 미국 내 삼성전자 임원들 중 가장 서열이 높다. 그는 인텔을 비롯해 다양한 실리콘밸리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를 보좌하는 건 디지털 헬스 부문의 램 피쉬 부사장과 룩 줄리아 이노베이션 부문 부사장이다. 두 임원은 모두 애플을 거쳤다.

손 사장에 따르면, 이들에게 내려진 특명은 삼성전자가 "한국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찾는 것이었다. 아낌없는 지원도 이어졌다. 10억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를 조성해 IoT와 헬스케어 등 분야의 유망한 기술을 확보하도록 했다.

신속하게 확보한 기술들을 지속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경영권 개입도 자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전에 인수한 해외 기업에 '삼성 문화'를 강요하면서 실패를 맛봤다. 삼성 고위 임원은 "무턱대고 인수하는 것보다 지분 투자로 인력과 기술을 활용하는 게 좋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