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저녁 8시 서울의 한복판 명동 거리는 한산했다. 불과 보름 전만 해도 퇴근길 직장인과 중국인 관광객이 뒤섞여 길을 걷기가 힘들 정도였던 거리가 텅 비어 있었다. 어묵 꼬치를 파는 한주현(29)씨는 "이맘때는 본격적인 성수기라 하루 20만~30만원은 벌었는데 오늘 벌이는 2만원이 전부"라고 했다. 이날 오후 1시 30분쯤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1층 매장에는 손님보다 종업원이 더 많았다. 한 화장품 매장 직원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지금까지 우리 매장에 들어온 손님은 딱 두 명이었다"고 말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퍼지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포감이 확산되면서 소비 위축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식당과 주점을 가리지 않고 손님들 발길이 끊겼다. 외국인 관광객이 확 줄어 명동과 강남 등의 상가와 면세점은 물론이고 전통시장까지 매출이 급감했다. 놀이공원, 영화관, 박물관 등은 입장객이 50~80% 정도 감소했다.

한산한 입국장… 썰렁한 명동 거리 - 메르스 여파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 발길이 뜸해졌다.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심사대 앞(위 사진)은 한산했고,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비던 서울 명동 거리(아래 사진)도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이달 17일까지 메르스를 이유로 한국 여행을 취소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11만7810명에 이른다.

이대로라면 '미약하지만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던(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한국 경제가 또다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들이 힘을 합쳐 머지않아 메르스를 퇴치하게 되더라도, 소비심리가 이처럼 과도하게 위축돼 경기가 차갑게 식어버린다면 경기 살리기는 더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가뜩이나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수출 부진 등으로 우리나라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대로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스 불황'이 겹치면서 벌어지고 있는 과도한 소비 위축은 숫자로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본지가 메르스 사태에 따른 주요 유통업체의 매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09년 신종 플루나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보다도 충격이 훨씬 더 큰 것으로 파악됐다. 대형마트 1위 이마트는 첫 사망자가 발생한 이달 1일부터 16일까지의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8.8% 감소했다.

특히 가전제품(-22%), 패션(-16%), 생활용품(-10%) 등의 감소세가 컸다. 이마트 관계자는 "세월호 때는 전국적으로 2주차 이후엔 회복세로 접어들었으나 메르스는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충격을 받는 곳은 관광업계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이달 17일까지 메르스를 이유로 한국 여행을 취소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11만7810명에 이른다. 올 들어 매출이 전년 대비 20~30%씩 성장해오던 면세점은 메르스 확산 이후 거꾸로 그 수치만큼 마이너스가 됐다.

중소기업청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이달 9일부터 13일까지 전국 1403여명의 소상공인을 조사한 결과 전통시장 방문객과 매출액은 50~80 %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급격하고 광범위한 소비 위축은 메르스 확산 속도나 방역 당국의 통제 가능성에 비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클레이스, 시티그룹 등은 "메르스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이 제한적일 경우 경제 영향은 단기적인 충격에 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인 상황이 아닌데도 국민이 심리적으로 너무 위축돼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도 추가경정예산을 대규모로 편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을 3%로 유지하려면 발빠르고 과감하게 적어도 20조원 규모로 편성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