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북쪽 방면에 위치한 ‘콩두'는 미식가들 사이에 꽤 유명하다. 하지만 콩두를 찾아가려면 구세군중앙회관 근처에서 지도를 서너번 보거나, 근처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 한옥을 개조한 콩두는 흔한 간판도 없이 얉은 언덕에 콕 박혀 있고, 근처에 경찰초소가 있어 언뜻 식당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콩두는 2016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빠르면 2016년초 서울 정동역사거리와 대한성공회서울대성당 일대가 이어짐으로써 도심 한가운데 외딴 섬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서울시와 주한영국대사관은 지난 달 14일부터 덕수궁길 회복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따라 측량작업, 보안시스템 점검 등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양해각서에 따른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할 경우 내년 1~2월쯤 덕수궁돌담길 전 구간을 누구나 걸을 수 있다.

덕수궁은 경운궁의 별칭으로 조선말 고종이 이곳에 머물러 정사를 펼치면서 본격적인 궁궐로 조성됐다. 하지만 일본, 미국, 영국 등 열강들이 덕수궁 영역에 밀고 들어오면서 67049m2 규모로 축소돼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이번에 복구되는 덕궁길 돌담길 구간은 영국대사관~경기여고터 구간 170여m로, 1950년대 영국대사관이 이 구간을 막고 대사관 권역으로 사용하면서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없었다. 이 구간이 개방되면 그동안 끊겨 있던 구세군중앙회관일대와 성공회서울대성당 일대가 연결된다. 이에 따라 정동제일교회 등이 자리를 잡은 정동일대 역사거리와 서학당터 등이 있는 거리가 서로 연결되어 덕수궁 관련 역사 콘텐츠 범위가 크게 확장된다.

덕수궁길이 50여m 이어지다 끊어지는 영국대사관 후문 바로 옆(덕수궁길 116-1)에 위치한 한식당 콩두의 권헌준 본부장은 “이 부지가 인수대비의 집무실터였고 한 때는 요정이었다고 들었다. 2년 전 저희가 이 건물을 매입했을 때는 오랫동안 폐가로 남아있었다”고 당시 풍경을 전했다.

음식점 입구부터 1층 창문을 따라 영국대사관 담 위에 설치한 철조망이 선명했다. 영국대사관 정문과 세종대로 사이의 120m 구간(세종대로 19길)도 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어 겨우 자동차 11대 짜리 주차장 노릇만 하고 있다.

영국대사관 정문 앞 도로(세종대로19길). 바리케이트와 경찰 초소가 삼엄하다.


영국대사관 부지내 덕수궁길은 복잡한 문제도 안고 있다. 서울시 중구청은 오랫동안 영국대사관 부지에 포함된 170m에 달하는 덕수궁 담장 아래 구도(區道)를 영국대사관이 무단점유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러나 영국대사관측은 "1950년대 서울시로부터 일부 땅을 임차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며 문제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변화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됐다. 서울시는 땅주인을 따지기보다는 해당 도로를 문화재 주변 산책로로 조성하고 명동의 중국대사관 일대처럼 해당국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대사관 주변을 정비하자는 설득 전략을 세웠다.

서울시는 협상팀도 영국 서리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조성일 도시안전본부장을 필두로 영국에서 유학한 인사들로 꾸렸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해 11월 스콧 와이트먼 대사를 찾은 것을 시작으로 올해 새로 취임한 찰스 헤이 대사를 3월과 5월 잇따라 만나 설득했다.

시민들의 덕수궁길에 대한 높은 관심도 양측의 대화를 거들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열린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덕수궁길에서 ‘길에서 놀자 - 파란만장’이란 이름의 벼룩시장을 열었다. 중구도 올해 5월 덕수궁길과 정동의 밤길을 걷자는 취지로 ‘정동야행’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열었다. 미국대사관저 개방행사도 포함된 이 축제에 9만여명의 시민들이 다녀갔다.

덕수궁길 복원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인근 20여개 점포의 상인들의 기대감도 점차 커지고 있다. 콩두의 권 본부장은 “정동제일교회에서 대사관으로 올라오는 경찰 초소에서 해가 떨어지면 도로를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가린다. 그래서 손님들이 당연히 못들어가는 길로 알고 한참 돌다가 전화하고 갈 수 있는 길이냐고 물어보고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매출에도 영향이 있었다”며 “우리 입장으로는 길이 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