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와 회사채권자는 영업시간 내에 언제든지 서면 또는 파일의 형태로 전자주주명부에 기록된 사항의 열람 또는 복사를 청구할 수 있다.”

상법 시행령 11조는 주주의 주주명부 열람권에 대해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삼성과 엘리엇매니지먼트 간의 삼성물산 지분 경쟁이 본격화한 현재, 주주 입장에서 누가 어느 정도 지분을 보유했는지는 꼭 알아야 할 정보다. 하지만 삼성물산 소액주주가 주주명부 열람권을 행사하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취재를 위해 삼성물산 주식 6주를 매입한 다음, 지난 8일 주주명부 열람 문의를 했다. 이튿날까지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담당자는 계속 자리에 없었다. 겨우 다른 직원으로부터 실질주주증명서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발급 방법과 열람 요구 절차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증권업계에 수차례 질문한 끝에 한국예탁결제원에서 발급하는 실질주주증명서를 확보한 다음, 1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사옥을 방문했다. 그러나 담당자는 “주주들의 개인정보가 많이 기록돼 열람이 곤란하다”고 했다.

상법은 주주명부를 열람할 때 회사가 다른 주주의 이메일 주소를 가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주주의 개인정보 관리 책임이 회사에 있으며, 개인정보를 이유로 주주명부 열람을 제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를 근거로 재차 열람을 요청하자 삼성물산은 그제서야 “열람 신청서를 작성해 보내달라”고 했다. 회사에 직접 열람 신청서를 제출하려 했으나 담당자가 이를 거부해, 퀵서비스를 불러 전달했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12일 현재까지 어떤 연락도 하지 않은 채 주주명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삼성물산은 정관 11조에 ‘소수주주에 대한 보호’ 항목으로 “주주는 회사에 대하여 이유를 붙인 서면으로 회계의 장부와 서류의 열람 또는 등사를 청구할 수 있다. 회사는 주주의 청구가 부당함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회사가 스스로 만든 정관을 지키지 않고 주주열람권을 묵살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발표와 엘리엇 사태가 발생한 후 삼성물산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은 급격히 커지고 있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엘리엇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소액주주 물량만 70만주가 넘는다. 삼성전자, 삼성SDS 등 삼성물산이 보유한 계열사의 주식 가치만 14조원에 달하지만 합병을 발표하면서 밝힌 삼성물산의 회사가치를 8조원으로 축소한 것이 주주들 불만의 핵심이다.

지난 며칠 간 삼성물산이 주주열람권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주들의 불만이 단순히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주가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정보마저 제공하지 않고, 주주와 소통하지 않는 것이 주주 불만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삼성 출신인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과 엘리엇의 공격에 대해 “(삼성물산이)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의사소통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삼성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