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는 '성격'이 정반대인 두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AI)이 등장한다. 어벤져스 군단의 아이언맨을 돕는 '자비스'와 지구를 파멸시키려는 '울트론'이다. 아이언맨이 처음 울트론을 불러낸 건 지구를 지키겠다는 선의(善意)에서였다. 하지만 울트론은 이내 자비스를 무력화하고 점점 더 강력하게 변신하며 지구를 위협한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영화 속의 상상이 아니라 세계 IT(정보기술) 업계의 실제 화두(話頭)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미 상용화하고 있고, IT 기업들은 더 수준높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드론(무인항공기)이나 무인자동차, 빅데이터 등 기술과 인공지능을 접목해 새로운 서비스·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경고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인간의 수준을 넘어선 인공지능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면 인류의 삶이 황폐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첨단 과학·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일부 인사들도 이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공지능은 장밋빛 미래일까, 불행의 서막일까.

구글이 개발 중인 자율 주행 자동차(사진 위)와 애플의 음성 인식 비서 서비스 ‘시리’(가운데)는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대표적 사례다. 아래는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이 실시간으로 분석한 기상 정보를 스마트폰에서 확인하는 모습. / 구글·블룸버그·IBM·Getty Images

인공지능 기술 개발 뛰어드는 IT 기업들

구글은 지난달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인공지능 학회에서 'Im2Calories'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인공지능이 사진 속 음식의 칼로리를 자동 계산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작업이 가능하려면 먼저 컴퓨터 프로그램이 사진 속 음식의 종류와 양을 파악해야 한다. 여기에는 인공지능의 한 분야인 딥 러닝(Deep Learning·데이터를 반복적으로 분석해 의미를 찾는 과정) 기술이 적용된다. 구글은 "처음 몇 번은 분석 결과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이 사용할수록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구글은 지난해 인공지능 기술을 지닌 벤처기업 딥마인드(DeepMind)를 4억달러(4472억원)에 인수했다. 딥마인드는 올 초 비디오게임 플레이 방법을 자동 학습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DQN'을 선보였다. 49종의 게임으로 테스트한 결과, 플레이 방법을 사전에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DQN은 절반이 넘는 29개 게임에서 인간 게이머들보다 75% 이상 높은 득점을 올렸다.

페이스북은 1년 전부터 인공지능 연구 조직을 두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뉴욕에 이어 이달 초에는 프랑스 파리에 제3의 인공지능 연구소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파리 연구소는 이미지·음성 인식, 자연어 처리 등 장기 프로젝트를 담당할 예정이다. 페이스북은 "인공지능 기술이 사진·검색 등의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기술의 새 장(章)을 열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차이나 브레인' 프로젝트 제안

중국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지 최대 검색업체 바이두(百度)의 리옌훙(李彦宏)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열린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에서 '차이나 브레인'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차이나 브레인은 인간·기기 간 상호작용, 무인자동차, 군사·민간용 드론 등의 분야를 망라하는 대규모 인공지능 개발 프로젝트다. 미국이 아폴로 프로젝트로 우주 개발 최강자가 된 것처럼 중국도 범국가적 지원을 통해 인공지능 최강국이 되자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도 인공지능에 주목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AI 랩(Lab)'을 운영 중이다. 게임에 인공지능을 접목하면 사용자의 플레이에 따라 컴퓨터가 대응을 달리하며 게임의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위기를 헤쳐나갈 차세대 기술로 인공지능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도 온라인 파일저장 서비스 'N드라이브'에 인공지능을 일부 활용하고 있다. 이용자가 사진을 온라인에 올릴 때 따로 키워드(주제어)를 입력하지 않아도 주제에 따라 자동으로 분류해주는 기능 등이 그것이다.

실험실 수준을 뛰어넘어 이미 상용화 단계에 온 기술도 있다. 애플은 지난 8일(현지 시각) 개발자회의에서 더 똑똑해진 음성 비서 서비스 시리(Siri)를 소개했다. 소비자의 이용 습관을 파악해서 자동으로 특정 앱(응용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거나 연락 대상을 추천하는 기능이 있다. 다음 달 출시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10에도 사용자 음성을 인식해 필요한 정보를 검색·추천해주는 인공지능 서비스 '코타나'가 들어간다.

"인간 통제 벗어날 것" 우려의 목소리도

인공지능이 밝은 미래만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를 크게 두 가지로 분류했다. 우선 인공지능이 결정을 내릴 때 사람처럼 도덕적 가치 판단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 장기적으로는 언젠가 인간과 대등한 수준의 인공지능이 탄생하면 다른 인공지능을 기하급수적으로 만들어내 결국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독자적 의도와 의지를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견해다.

이런 생각을 가진 대표적 인물이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다.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도 불리는 그는 아이언맨과 달리 지난해 "인공지능은 악마를 깨우는 것"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그는 올 초에는 미국 '생명의 미래 재단'(Future of Life Institute·FLI)에 1000만달러(111억원)를 기부한다고 선언했다. FLI는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연구를 지원하는 단체다. FLI는 지난 1월 공개 서한을 내고 "인공지능의 위험은 피하면서 장점을 극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서명한 사람 중에는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도 있다. 워즈니악은 "결국 인공지능이 사람을 앞서게 되면서 효율성을 위해 인간을 배제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도 가세했다. 그는 현재 인공지능 기술의 혜택을 직접 누리면서도 더 고차원적인 인공지능의 출현에는 우려를 표했다. 루게릭병을 앓는 그가 대화에 사용하는 보조기구에는 호킹 박사의 단어 선택 패턴을 학습하는 기술이 들어간다. 하지만 호킹 박사는 "완전한(full) 인공지능은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