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면세점에서 수천만원짜리 시계를 3~4개씩 사가는 중국인 관광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국이 중국보다 값이 싸냐고 물어보면 아니란다. 그렇다면 왜? "적어도 한국 면세점에선 가짜를 파는 일은 없지 않으냐"는 답이 돌아왔다.

#2.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사업가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에게 물었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투자자가 그 자리에서 수표를 쓴다는 거였다. 왜냐고 물어보니, 실리콘밸리에서는 한 번도 기업가가 투자자를 속인 적이 없다고 답하더라. 만약에 누가 그들을 속였다면, 어차피 그 사람은 다시는 그 땅에서 뭔가를 할 수 없다."

#3. 경쟁사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품 종류를 갖춘 할인점이 있다. 그래도 고객들은 매년 30~50달러의 연회비를 내고 물건을 사간다. 그리고 고객의 90%는 매년 다시 연회비를 낸다.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짧은 시기인 6년 만에 매출 30억달러를 달성한 코스트코 얘기다. 비결은 뭘까? "뭐든지 여기서 사면 다른 곳에서 사는 것보다 싸다"는 게 회원들의 얘기다.

위의 세 가지 얘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신뢰'다.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은 한국 면세점을 믿기에 지갑을 연다. 실리콘밸리에서 '자발적 창조경제'가 가능한 이유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 덕분이다. 신뢰 자본은 거래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인다. 경제 주체들이 쓸데없는 의심과 불안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본질에 집중하게 되니 생산성이 높아진다.

코스트코 역시 신뢰를 파는 곳이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최저가에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회원들을 북적이는 매장으로 이끈다.

'신뢰가 돈이다'라는 명제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신뢰를 쌓을 것인가? 전통적인 방법 두 가지와 새로운 방법 한 가지가 있다.

전통적 방법은 일관성이다. 한마디로 예측 가능해야 한다. 술 한잔 후 아들의 형편없는 성적표를 보며 "아빠도 옛날에 그랬어!"라며 호방하게 웃던 대인배 아빠. 그 아빠가 맨정신에 아들의 형편없는 성적표를 보며 화를 낸다면? 아들은 아빠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이 사람은, 이 회사는 이럴 때 한결같이 행동할 것이라는 타인의 예상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기업으로 치면 핵심 가치(core values), 즉 '우리 회사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할 원칙'이 살아 작동하는 회사가 신뢰를 얻는다.

두 번째 전통적 방법은 단기 이익보다는 장기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코스트코는 창업 때부터 '마진 15%룰'을 지킨다. 마진이 더 이상 생길 때는 오히려 판매 가격을 낮춰 버린다. "15% 이상 이익을 남기면 기업의 규율이 사라지고 탐욕을 추구하게 된다.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길게 봤을 때 고객들이 떠나고 기업은 낙오한다"는 게 짐 시네갈 창업자의 철학이다.

신뢰를 얻는 새로운 방법은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의 데스테노 교수는 "사람은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간다"고 말한다. 이유는 놀랄 만큼 단순하다. 누구든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덜 필요해진다.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남들 앞에서 거칠 게 없어지고 굳이 남의 신뢰를 얻기 위한 수고로움을 덜하게 된다. 이는 마치 독점기업의 폐해와 같다. 견제 없는 권력이 부패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면 절대 권력이 없는 사람에겐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받아야만 다른 사람의 도움과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하더라도 노력하게 된다. 신뢰받는 리더의 상당수가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힘을 절대화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기업의 리더가 회사 돈 10억원을 한강물에 던져 버렸다고 가정하자. 그는 분명 횡령이나 배임으로 법적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신뢰라는 자본을 가벼이 여기지 말자. 신뢰를 깨뜨리는 리더는 회사 돈을 한강물에 던져 버리는 리더와 다를 바 없다. 신뢰는 곧 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