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은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 향방을 좌우할 '운명의 날'이다. 삼성물산이 다음 달 17일 개최하는 합병 관련 임시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오늘(9일)까지 주식을 매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외의 복병을 만난 삼성그룹과 삼성물산 경영권 참여를 선언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우호 지분 확보를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을 팽팽하게 벌이고 있다.

엘리엇은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요 주주에 합병 반대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며 세력 결집에 나선 상태다. 이에 맞서 삼성은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이 외국인 투자자 설득을 위해 홍콩으로 날아간 것을 비롯해 김신 삼성물산 사장과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 등 그룹 내 재무통이 총동원돼 국내 기관투자가들을 삼성 편으로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삼성물산 발행 주식의 50% 정도 확보해야 안전"

삼성물산은 다음 달 17일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앞두고 주주 확정을 위해 이달 11일 주주(株主) 명부를 폐쇄한다. 보통 주식을 매수하면 이틀 뒤 주식이 계좌에 입고(入庫)되는 것을 감안하면, 9일 증시 폐장 전까지 삼성물산 주식을 매수해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증권가에선 주총에서 합병안(案)을 통과시키려면 삼성물산 발행 주식 수의 50% 정도는 확보해야 안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합병 같은 특별 결의 안건은 주총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 주식의 3분의 1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올 3월에 열린 주총을 포함해 최근 3년 동안 삼성물산 정기 주주총회의 주주 참석률은 평균 60% 안팎이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상황에선 주주 참석률이 10%포인트 이상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이에 따라 주주 참석률이 70%라고 가정할 경우, 발행 주식의 47% 이상을 확보해야 합병안 통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엘리엇, 票 대결 질 경우 소송 다시 제기할 수도

문제는 삼성이나 엘리엇 모두 합병안을 통과시키거나 부결시키기에는 현재 갖고 있는 지분 비율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엘리엇은 이달 4일 경영권 참여를 목적으로 지분 7.12%를 취득했다고 공시하면서, 다음 달 주총에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이 7.12%로 확정됐다. 경영 참가를 목적으로 지분을 취득했다고 공시한 다음 날부터 5일 이내에 취득한 지분은 의결권이 제한된다는 '냉각 기간' 제도 때문이다. 여기에 주주 명부가 폐쇄된 이후 취득한 지분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엘리엇 입장에선 의결권을 늘릴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군(友軍)의 도움이 절실하다. 증권가에선 외국인 투자가의 상당수가 주총에서 엘리엇의 우군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한다. 엘리엇 진영이 주총 표 대결에서 질 경우 '합병 비율이 불합리하다'며 한국이나 영국 법원에 소송을 다시 제기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논란에도 엘리엇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여전히 많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합병이 무산되면 삼성물산 주가가 폭락할 게 확실한 상황에서 자충수를 둘 투자자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삼성그룹 "자사주 매각은 안 해"

재계에선 삼성이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중 하나는 9일까지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5.76%를 우호 세력 혹은 계열사에 매각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다.

자사주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외부에 매각하면 의결권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올해 초 넥슨과 경영권 분쟁을 벌인 엔씨소프트가 자사주를 넷마블에 매각해 경영권을 지키는 데 활용했다. 증권가에선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제일모직 지분 10.18%를 갖고 있는 KCC가 백기사로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하지만 삼성은 자사주 매각설을 부인하고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자사주를 매각하면 '꼼수를 동원했다'는 등 또 다른 분쟁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고 지배구조 문제를 제기하는 엘리엇 측의 당위성만 더 높여줄 수 있다"며 "자사주 매각 없이도 합병의 긍정적 효과 등을 알리면 우호 지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