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이후 미시 데이터 연구에 총력
"서비스 산업 생산성 높이려면 자유로운 진입, 퇴출 허용해야"
정확한 실증분석 없이 도입된 정부 규제에는 '쓴소리'
"한국 경제 분석하는 연구 '토착화'가 내 임무"

전현배 서강대 교수(47)는 생산성 실증분석 분야 전문가로, 대규모 미시 데이터를 이용해 거시 경제와 산업의 생산성이 증가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일반적인 경제 연구가 표본과 평균을 본다면 전 교수의 연구는 전수 자료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전 교수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87학번으로 경제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NYU)에서 유학했다. 특히 전 교수는 IT 혁명이 미국 경제의 생산성을 향상시킨 것은 모든 기업이 균등하게 성장한 결과가 아니라, IT 혁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인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이 퇴출되는 ‘창조적 파괴’ 과정의 결과라는 점을 학문적으로 분석해냈다.

전현배 교수는 미국 경제의 생산성 향상은 IT혁명과 함께 창조적 파괴가 나타난 결과라는 연구로 한국경제학회가 만 45세 미만 경제학자 중 탁월한 연구업적을 거둔 학자에게 주는 ‘청람상’을 수상했다.

전 교수는 “이 연구는 거시 경제에서 관측되는 평균적인 현상이 모든 개별 주체에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낸 것으로 의미가 있다”며 “거시 경제 현상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경제 전체를 구성하는 개별 기업체 분포와 그 변화를 분석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 9.11 테러로 시작된 미시 데이터 연구방법론

전 교수의 연구 방법이 미시 데이터 분석으로 심화된 계기는 2001년 발생한 9.11 테러였다.

전 교수의 지도교수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이샥 나디리(Ishaq Nadiri) 교수였다. 나디리 교수는 산업조직론 중 기술혁신과 생산성 분야를 전공하는 전문가로, 당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전 교수도 나디리 교수의 영향을 받아 생산성 분야를 연구했다.

그런데 9.11 테러가 발생하며 큰 변화가 나타났다. 나디리 교수가 9.11 테러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난 후 고국의 재건을 돕기 위해 아프가니스탄행(行)을 택한 것이다. 나디리 교수는 2005~2008년 아프가니스탄 경제 수석을 지내며 경제 재건을 책임졌다.

전 교수는 “지도교수였던 나디리 교수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면서 미국에 남아서 미국 경제만을 실증 분석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게 됐고, 본격적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미시실증분석을 연구하기 위해서 1년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며 “결론적으로 9.11 테러가 나의 귀국과 연구 진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후 전 교수는 우리나라 서비스업의 대규모 사업체 자료를 이용해 미시 기반 실증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 과정은 쉽지 않았다. 우리 경제 학계에서 미시 사업체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가 아직 활발하지 않은 탓이다. 그동안 이뤄진 연구 초점이 국내보다 주요 선진국에 맞춰져 있었고 국내 경제, 산업 연구는 우리 경제의 미시 기반을 실증분석하기보다 해외 사례와 비교해 시사점을 도출하는 정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만큼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통계 자료가 부족하다.

전 교수는 “데이터 인프라를 스스로 구축하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연구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 “대형마트 진입, 상대적 고용 증가시켜”

전 교수의 연구 중 특히 주목할 만한 논문은 대형마트의 진입이 지역 사회의 고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다. 전 교수는 이 주제를 연구하기 위해 통계청이 발표하는 전국사업체조사 자료를 장기 시계열로 분석했다.

전 교수는 “연구 결과, 소매 자영업 시장의 고용은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대형마트의 진입은 고용 감소 폭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대형마트의 진입이 해당 지역의 고용을 증가 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형마트의 등장은 해당 지역에 있던 기존 소규모 자영업자를 퇴출 시키지만, 동시에 관련 자영업자를 새로 끌어온 결과다. 전 교수는 “해당 자영업 시장에서 대형마트가 주도하는 ‘창조적 파괴’가 나타나는 것”이라며 “대형마트의 진입이 전체 고용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는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또 “제조업의 경우는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성 증대 효과가 크지만, 서비스 업종에서는 기술 혁신보다는 높은 생산성을 가진 신규 업체가 생산성이 낮은 업체를 대체하는 자유로운 시장 진입, 퇴출에 따른 생산성 증대 효과가 더 크다”며 “대형마트를 포함하는 소매업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 ‘대형마트의 진입은 어떻게 소매업의 고용을 증가시키는가(How does the entry of large discount stores increase retail employment? evidence from korea)’는 내년 유명 경제 학술지인 ‘비교경제저널(The Journal of Comparative Economics)’에 실릴 예정이다.

◆ “정부 규제 도입, 사전 분석 반드시 필요”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의 신규 진출과 영업시간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전 교수가 수행한 연구 결과를 보면 적어도 고용 창출 측면에서는 정부의 대형마트 규제 근거가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정부가 규제를 도입할 때 해당 산업의 구조에 대한 정확한 실증분석과 종합적인 이해 없이 규제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규제 정책은 시장 구조 뿐 아니라 산업 전반의 고용과 생산성, 시장경쟁에 따른 소비자 후생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지만 정확한 진단이 부족한 상태에서 규제를 도입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다만 전 교수는 “이 연구 결과가 곧 대형마트 규제 완화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규제에 따른 비용이 존재하더라도 특정 부분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다면 규제는 시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도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의 최고 목표가 고용과 산업의 생산성 확대라면 소매시장의 진입과 퇴출이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하지만, 소상공인 보호 등에 정책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국민적 합의에 따라 규제 비용을 감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경제 연구 토착화가 내게 주어진 임무”

전 교수는 앞으로도 미시 데이터를 통해 우리 경제 산업의 특성을 파악하는 연구에 주력할 계획이다. 그는 “미국의 경우 지난 25년 간 대규모 사업체 자료를 이용해 거시 경제에 대한 다양한 실증분석이 이루어졌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론들이 많이 개발됐지만, 우리나라는 이 분야 연구가 상당히 뒤처져 있어 한국형 시장경제와 산업구조에 대한 이론 모형을 개발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우리 경제에 대한 연구에 천착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나라와 우리 경제는 같은 점도 많지만 분명히 우리나라 경제만의 특수성이 있다. 우리나라 경제 구조와 외국 사례가 10개 중 9개가 같더라도 외국 이론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10가지 중 어떤 것이 같고 다른 지 실증분석을 통해 확인이 필요하다. 이를 밝히려면 거시 자료가 아닌 미시 자료를 연구하는 것이 필수다.”

전 교수는 “일본은 장기 공동 연구를 통해 미국과 이 분야의 연구 격차를 상당히 줄였다”며 “미시 데이터를 이용해 한국 경제 구조를 장기적으로 연구하는 공동 연구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젊은 경제학자로서 미국 경제학 이론을 수입하는 것을 넘어 한국 경제의 일반성과 특수성을 실증적으로 구별해내는 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이 작업을 경제학 연구의 ‘토착화’라고 표현했다.

한편 통계청은 지난해 서강대에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 마이크로데이터 이용센터를 설립했다. 전 교수는 “학내 미시 데이터를 활용하는 연구에 두각을 나타내는 연구자들과 함께 장기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 교수는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쓴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권했다. 그는 “책의 주요 내용은 결국 각 나라가 가진 제도가 시장 매커니즘을 결정한다는 것”이라며 “우리 제도와 시장이 다른 나라와 어떤 점이 다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