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크게 내려가기 어렵다…외환보유액 비용 생각해야"
"금리인하, 지금은 실물경제에 효과 없다…저물가 때문에 필요"
"내수가 견인하는 성장은 한계…수출 주도 성장 정책 유지해야"
"달러 위주 국제통화시스템 개혁해야…세계경제 장기적으로 낙관"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48)는 환율이나 금리를 조절하기 위한 정책을 쓰는 것에 대해 “인위적인 정책은 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하는 경제학자다. 만약 정책을 쓴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 수시로 정책 수단을 쓰는 재량(Discretion)보다는,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따르는 준칙(Rule)의 방식으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그렇다고 '경제를 시장에 맡기자'는 고전학파(Classical School) 경제학자는 아니다. 그는 스스로를 '정부당국이 재정·통화정책을 통해 개입해야 한다'고 하는 케인지안(Keynesian, 케인스 학파 경제학자)에 가깝다고 했다.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시대이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는 정책 수단을 통해 경기 변동성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 예일대는 다른 동부의 학교와 마찬가지로 케인지안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지난달 14일 서울 중구 본사 인근 카페에서 김 교수와 3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짙은 청색 정장에 푸른색 넥타이를 다소 엉성하게 맨 그의 첫인상은 한눈 팔지 않고 공부를 꽤 잘했던 모범생의 느낌이었다. 수줍은 미소와 조용한 말투 역시 세파에 찌들지 않은 학자의 모습이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친절한 선생님과 호기심 많은 제자의 과외 수업 시간 같았다. 꼬치꼬치 캐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 교수는 계속 웃는 얼굴으로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무지해 보이는 질문에 답답할 때도 있었을 법한데, “경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도 참 재미있다”면서 대화와 고민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학자이면서 교육자라는 그의 직업은 몸에 꼭 맞는 옷인듯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한 세 명의 경제학자 이름을 듣고 나니, 그의 이런 모습이 이해가 갔다. 지난 201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크리스토퍼 심스(Christopher Sims) 교수의 학자적인 풍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 같았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 등을 지낸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뉴욕대 교수와 아베노믹스의 설계자로 알려진 하마다 고이치(Hamada Koichi) 예일대 명예교수의 현실경제 참여 정신도 엿보였다. 모두 세계에서 유명한 경제학자로 꼽히는 이들이다. 그동안 그가 수행한 연구의 내용과 국내외 경제 현안에 대한 의견 등을 들어봤다.

◆ “현실 경제 분석과 학문적 진보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연구 해야”

-주로 연구하는 분야는.

“거시경제정책과 국제금융정책 등이 주요 관심 분야다. 최근에는 자본통제와 관련된 연구도 많이 하고 있다. 정책 관련 연구를 하는 이유는 어떤 정책이 유효한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정부나 중앙은행이 정책을 제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는 자기만족을 위한 연구보다는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게 신념이다.”

-연구 주제를 정할 때 기준이 있나.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이어야 하고, 학문적으로도 우수한 결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되는지를 먼저 고민하고 연구를 시작한다. 현실을 분석하는 것에만 신경 쓰는 연구도 있고, 학술적인 진보에만 신경을 쓰는 연구도 있다. 이런 연구는 반쪽짜리다. 학술적인 진보라는 것은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방법론을 꺼낸다든지, 남들이 보지 않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 등이다. 이걸 늘 고민한다.”

-박사학위 논문은 어떤 내용이었나.

“통화정책이 실물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분석한 논문이다. 선진 7개국(G7)의 자료를 분석했다. 통화정책은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정책을 쓰는 재량적인 방식과 일정한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정책을 쓰는 준칙적인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전까지는 미세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재량 방식이 효과가 크다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연구 결과 재량 방식의 효과는 생각만큼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준칙 방식을 쓰면서 평상시에 준칙대로 하고 특별한 시기에는 준칙을 바꿀 때 효과가 컸다.”

-그동안 발표한 논문 중 가장 반향이 컸던 논문은 무엇인가.

“누리엘 루비니 교수와 예일대 박사과정 시절 쓴 ‘선진국에서의 환율 퍼즐에 관한 연구’(Exchange Rate Anomalies in industrial Countries: A Solution with a Structural VAR Model)라는 논문이다. 2000년 통화경제학저널(Journal of Monetary Economics)에 게재됐다. 지금까지 600회 이상 인용됐다. 통화정책이 환율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했다.

기존 연구들이 통화정책을 썼을 때 환율의 오버슈팅(overshooting, 일시적으로 급등하는 것) 현상이 지연돼 나타난다고 분석한 반면, 이 연구는 통화정책과 환율이 상호작용을 하는 것까지 고려해 살펴보면 지연 현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밖에 미국의 통화정책이 다른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 2001년 논문과 재정정책이 경상수지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2008년 논문도 300회가량 인용된 논문들이다.”

-최근에 연구한 것을 소개하자면.

“여러 건이 있다. ‘재정정책이 경상수지와 환율에 미치는 영향’(Country Characteristics and the Effects of Government Consumption Shock on the Current Account and Real Exchange Rate)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국제경제학저널(Journal of International Economics)에 게재될 예정이다.(2008년 논문과는 다른 것)

18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정부 지출 충격이 경상수지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기존 연구에서 이 영향에 대해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이번 연구는 많은 국가를 비교해 보다 일반적인 결론을 도출하고, 국가별로 왜 차이가 나는지를 분석한 것에 의미가 있다.

연구 결과 정부 지출이 증가하면 대부분 국가에서 자국 통화의 평가 절하가 나타났고, 특히 변동환율을 채택한 나라에서 이런 현상이 더 뚜렷했다. 또 국제 자본 이동성이 환율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점도 발견했다. 국제 자본 이동성이 낮으면 평가 절하 정도가 컸고 무역수지 개선 효과도 컸다.

환율 제도와 무역 개방도 역시 효과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실증 분석 결과를 모두 설명할 이론이 없는 상황이라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 교수는 연구활동을 꾸준히, 그리고 매우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올해만 해도 벌써 국제학술지 발간 예정인 논문이 4편에 달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원달러 환율, 크게 내려가기 어렵다…토빈세 도입 논의할 필요”

국내 경제 이슈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자 그의 답변은 조금 더 신중해졌다. 특히 전망을 묻는 경우에는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그렇다고 핵심을 비켜가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에 대한 세간의 기대가 지나치다고 했고 외환보유액에 너무 큰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 단기 자금의 움직임을 규제하는 토빈세(Tobin‘s Tax, 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 도입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리 인하에 대해서는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별로 없다”면서 “금리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화 가치가 너무 높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 환율은 적정한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환율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해놓고 나면 곧 후회를 한다. 혹시 틀릴까 봐 계속 환율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웃음) 적정 환율은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 답이 매우 다양하게 나온다. 어떤 게 맞는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환율이 적정 환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니 균형 환율에 가깝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전망을 굳이 하자면 원달러 환율을 기준으로 크게 내려갈 가능성은 작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출구전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환율은 약간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미국의 금리 인상은 한 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상당 기간에 걸쳐 지속할 것이다. 이 기간에 환율이 한 번쯤은 10%가량 오르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크게 요동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균형환율에 가깝다고 했지만, 수출 기업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직접 무역을 하는 사람 등에게는 엔저의 영향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국가가 정책을 써야 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환율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정책적으로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면 안 된다. 개방 경제에서 환율이라는 것이 정부가 내리고 싶으면 내리고 올리고 싶으면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자본 이동을 제약했을 때는 환율 통제가 가능했다. 정부가 환율을 조정해 수출을 늘리는 전략도 썼다. 지금 국제 금융시장은 모두 개방돼 있는 상황이다. 자본이 마음대로 들어왔다 나가기 때문에 환율 통제가 어렵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예전 생각을 하며 정부가 왜 안 하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것은 환율이 너무 갑자기 변하지 않도록 연착륙시키는 정도다.”

-외환보유액이 지나치게 많다는 의견이 있다. 이에 대한 견해는.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로 안전한 것도 아니다. 어려운 문제다. 우선 외환보유에 따른 비용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특히 고려되지 않는 비용이 너무 많다.

많은 사람이 외환보유액에 따른 이자비용을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더 많은 문제가 있다. 자산구조의 불균형이 우선 문제다. 우리는 외환을 주로 미국 채권으로 보유한다. 미국 채권은 이자가 없지만 유동성이 좋은 자산이다.

외국인은 우리가 내놓은 달러로 우리나라 주식을 산다.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엄청난 손해다.

또 다른 비용은 정부가 경상수지 흑자로 들어온 달러를 계속 쌓아놓으면서 생긴다. 정부가 쌓아놓지 않았으면 민간이 사용했을 것이다. 민간은 달러가 부족해 달러 빚을 쓴다.

외환보유액은 민간분야 외화부채가 늘면 같이 늘어난다. 결국 정부가 이자를 못 받는 달러를 쌓으면서 민간은 이자를 내야 하는 달러를 쓰고, 민간의 외화부채가 늘면서 정부는 달러를 더 쌓아야 하는 악순환이다.

정부가 과연 달러를 많이 갖고 있어야 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정부는 민간에서 달러가 모자랄 때를 대비해 달러를 보유한다. 어찌 보면 기업이나 은행 등 민간에서 알아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달러를 정부가 대신 보유하며 세금을 쓰는 셈이다.”

-외환보유액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자본통제나 통화스와프 같은 대안들을 만드는 노력 등 여러 가지 수단을 써서 장기적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과거 토빈세(Tobin’s Tax, 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 도입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토빈세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토빈세를 바로 도입하자는 것은 아니고 진지하게 논의해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금 발생하는 문제 중 상당수는 자본이동이 자유롭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우리나라가 계속 걱정하는 것이 자본이 갑자기 빠져나가는 경우 환율이 급등하고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것이다.

자본이동을 약간 불편하게 만들면 이런 위험이 상당히 줄어들 수 있다. 가장 직접적인 수단인 셈이다. 사실 정부나 외환 당국도 토빈세를 도입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상태라 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토빈세가 있으면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좋은 투자는 장기투자다. 잠깐 주식시장에 들어왔다가 금방 나가는 투자는 경제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런 자본은 제약해도 된다.

토빈세를 도입해도 장기투자를 목적으로 들어오는 자금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장 도입하자는 이야기는 아니고 유효한 수단이니 적극적으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 "금리인하 필요, 경기보다는 저물가 때문…가계부채는 금리로 통제 어렵다"

-금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더 내리는 게 필요한가.

“더 내리는 게 좋다. 금리를 내려도 실물경제에는 도움이 별로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플레이션이 너무 낮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계부채 걱정을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가계부채는 금리로 통제하기 어렵다. 다른 건전성 정책을 써야 한다. 가계부채가 금리 정책에 부담을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데 우리는 내리면 자금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주 많은 양은 아닐 것으로 본다. 결론적으로 금리는 약간 더 내리는 게 낫다.”

-연초만 해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도 미국 금리 인상에 맞춰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려갈 것이라고 말한다. 전문가의 전망이 왜 이렇게 들쭉날쭉한가.

“그때만 해도 미국이 금방 금리를 올릴 줄 알았다. 경제 회복도 더 잘 될 줄 알았다. 그때 상황에서는 우리도 금리를 올린다는 예상이 당연히 많았다. 하지만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이제는 내린다는 예상이 많아졌다.

경제 전망은 매달 바뀔 수 있다. 전문가들도 모두 비슷한 데이터로 분석하다 보니 예상도 비슷하게 요동치는 것이다.”

-금리를 올려라. 내려라 하는 목소리가 전에 없이 커졌다. 학자들이나 정치권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다.

“그래서 사실 금리 이야기는 많이 하면 안 된다. 너무 여기저기서 말이 많은 것 같다. 금리 이야기를 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한국은행보다 경제 지표를 자세히 보지도 않는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결정할 때 아주 많은 것을 보고 행동한다. 우리보다 10배, 100배는 더 많이 본다.”

-금리를 내려도 경기 부양 효과가 없는 이유는.

“전통적인 시각에서 보면 돈을 풀면 경기가 산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기업에 돈을 풀어도 투자를 안 한다. 그냥 갖고 있다. 민간 소비도 별로 늘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그래서 금리를 내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금융위기 이후부터는 돈을 풀어도 경기가 빨리 회복되지는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거시경제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을 조화롭게 연계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거시경제정책은 여러 가지다. 그런데 종합적으로 보는 시각이 부족한 것 같다. 그리고 정책 수단 하나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 금리를 이야기하면서 가계 부채 이야기도 하는 것이 좋은 예다. 금리 정책으로는 사실 물가를 감당하기도 어렵다.

정책 목표 하나에 수단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금리 하나로 여러 가지를 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판단하는 기능을 하는 곳이 필요하다.”

-한국경제는 지금 어려운 상황인가.

“장기적으로 성장세가 꺾인 것이 문제다. 최근 3%대의 성장세를 보인다. 그런데 이 성장률이 과연 낮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에 접어들면 성장 속도가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경제가 어느 수준에 오르면 자본이 축적되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한계생산성도 떨어진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이 언제 예전처럼 성장할 수 있을까를 이야기한다. 7%씩 성장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3%대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제일 좋을 때 3%대의 성장을 한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것이다.”

-그럼 지금은 어떤 이야기를 할 때인가.

“학계에서는 저물가 저성장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요즘 많이 이야기한다.”

-소득주도 성장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내수를 늘리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효과가 크다고 보나.

“단순히 내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크지 않다. 수요 측면의 부양은 장기적으로는 큰 효과가 없다. 장기적으로 성장하려면 공급 측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생산성 향상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는 이유다.

특히 우리나라는 계속 수출 주도형 성장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내수가 견인하는 성장은 한계가 있다. 수요를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 해외 수요는 무한대다.

내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논리 중 하나가 수출에 치중할 경우 수출이 잘 안 되면 우리 경기도 안 좋아진다는 걱정이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안정적인지 우리 경제가 안정적인지를 보면 세계경제가 훨씬 안정적이다. 수출주도 경제가 더 안정적이라는 이야기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워낙 크게 당해서 트라우마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국제유동성 시스템 개혁해야... 세계 경제 장기 전망은 낙관적”

김 교수는 주요국의 위험 요인이 신흥국에 불안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달러 위주의 국제 통화 시스템이 이런 문제를 심화한다고 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 전망은 장기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계 경제 변수는.

“다들 알다시피 미국과 일본, 중국과 그리스의 이슈들이다. 미국은 원래 더 빨리 회복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딘 회복을 보이고 있다.

금리 인상 시기가 불확실한데, 금리 인상 자체가 리스크는 아니지만, 신흥국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번 올리기 시작하면 천천히 오랫동안 올릴 것인데, 시장참여자들의 예상까지 영향을 미치면 파장은 더 커질 수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며 돈을 풀어놨지만, 경기가 별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 돈을 저렇게 풀어놨는데 해결이 안되는 경우 최악 시나리오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일본은 큰 나라다. 일본 경제가 회복하지 못하면 세계 경제도 영향을 받는다.

중국의 거품이 꺼지는 우려 역시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중국이 전 세계 수요를 이끄는 데 거품이 꺼지면 이것이 줄어드는 것이 문제고 금융위기 가능성도 있다.

그리스는 문제가 터지면 유럽 전체로 번지는 데다 EU라는 경제 체제까지 흔들 수 있어 위험하다. 이런 것들이 하나씩 터질지 동시에 터질지 알 수가 없어 전망이 어렵다.”

-아베노믹스는 실패인가.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일본 경제가 회복되지 않았지만, 만약 돈을 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겠느냐는 측면에서 볼 때 실패라고 말하기 어렵다. 앞으로 일본 경제가 매우 나빠지는 상황이 온다면 실패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가.

“각국 입장에서는 다 필요한 선택이었다. 대안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 보기에는 그렇다는 얘기다. 아직 양적 완화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나라와 신흥국 입장에서는 자본 이동 때문에 경제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어 걱정이 된다.”

-선진국의 문제로 신흥국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신흥국 위기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은 달러 위주의 통화 시스템 때문이다. 달러가 모자랄 때 위기가 생긴다. 국제거래가 대부분 달러로 이뤄지지만, 달러의 공급은 미국의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입장에서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에 대한 기억이 나빠 더 걱정을 한다.

그래서 국제 통화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달러가 모자란 국가가 가져다 쓸 수 있는 국제 유동성 공급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돈을 쉽게 빌릴 수 있게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여전히 신흥국인가.

“신흥국 중 앞쪽에 있는 것 아닐까. 단순히 경제 규모가 작아서라기보다는 채권시장 규제 등 제도도 아직 선진국 수준은 아니다. 또 통화 문제도 있다. 일본의 경우 엔화가 국제통화로 쓰인다.

사실 위기는 신흥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영국도 위기를 겪었다. 결국 국제투자가들이 우리를 선진국으로 보는지 신흥국으로 보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이번에 미국이 출구전략을 할 때 우리가 별다른 문제를 겪지 않는다면 신흥국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봐도 된다는 학자도 있다. 공감이 간다. 과거 같으면 돈이 나갈 궁리만 할 텐데, 요즘은 국제 자본도 헷갈리는 것 같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자금이 나간다는 의견과 안 나간다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고 자금이 빠져나가서 갑자기 환율이 널뛰면 관리를 해야 하나.

“환율 변동성이 큰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 환율이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수출이 늘어 위기를 넘겼다. 어떻게 보면 그냥 두는 것이 도움될 수도 있다.”

-세계 경제에 대한 장기 전망은 어떤가.

“나는 항상 미래가 밝다고 보는 편이다. 역사를 보면 어려운 곳이 있으면 잘 되는 곳이 있었다. 미국과 중국, 일본 같은 선진국도 좋았다가 나빠진다. 아직 성장할 국가들이 많다는 점도 전망을 좋게 하는 이유다. 장기 추세는 성장세일 것이다.”

◆ “경제학은 현실에 도움돼야 하는 학문, 잘 가르쳐야 미래가 좋아진다”

서울대 86학번인 김 교수는 한국은행이 연초에 여는 경제동향 세미나에 단골로 초청되는 학자다. 스페인 중앙은행에서 일한 적이 있고, 국제결제은행(BIS)과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도 일하는 등 관련 경험이 많다.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와 고려대 교수를 거쳐 2009년 친정인 서울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교육자로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대화에서 종종 학생에 대한 걱정과 나라에 대한 걱정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학생들은 어떤지. 교육관이 있다면.

“칭찬과 걱정을 동시에 해야 할 것 같다. 예전보다 영어도 잘하고 수학도 잘한다. 다 잘하는데 문제는 혼자 생각하는 능력이 과거 학생보다 떨어진 것 같다.

학생들에게 공부를 위한 공부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다. 좀 더 많은 생각을 갖고 사회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그게 본인에게도 의미가 있고 경제 전체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수학을 하는 사람은 수학이 너무 아름다워 공부를 한다고 해도 되지만, 경제학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경제학의 대상은 전 세계다. 어떻게 하면 나라가 더 잘 살까, 세계 경제가 더 잘 될까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미국 교수들은 수업과 교육은 최소한만 하고 연구에 집중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다르다. 경제학과 교수들과 가끔 '우리가 못 가르치면 우리나라의 미래도 어둡다'는 대화를 하곤 한다. 의무감을 갖고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학창시절 영향을 많이 받은 교수가 있다면.

“이준구 교수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이 교수님은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스타일의 시험 문제를 냈다. 외울 필요가 없고 이해한 다음 생각해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시험 당일 머리가 잘 돌아가도록 컨디션 조절을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미국에서는 크리스토퍼 심스 교수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완전한 학자이면서 교육에도 최선을 다한 분이다. 일주일에 한 번쯤은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미국 학교 분위기에서 이렇게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제에 상관없이 질문과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심스 교수는 한국에 강연을 하러 여러 번 왔다. 그는 강연료를 받지 않는다. 학술적인 일에 돈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현실 경제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학자들인 누리엘 루비니 교수와 고이치 하마다 교수의 영향도 역시 많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