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주얼리 전문기업 로만손은 1일 서울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에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를 열고 '제이에스티나 레드'란 신규 브랜드로 색조(色調) 화장품을 출시했다. 기존 주얼리·핸드백 브랜드 '제이에스티나'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자 새 브랜드를 만들어 화장품까지 진출한 것이다. 김기석 로만손 대표는 "첫날 구매 고객의 70%가 중국인이었다"며 "내년 하반기에는 기존 '제이에스티나' 브랜드로 고가(高價)의 기초 화장품 라인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륙의 얼굴이여, 나를 발라주오" -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 참가자들이 메이크업 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 중소·중견업체 50여곳은 최근 중국을 겨냥해 일제히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국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화장품 시장이다.

시계·섬유·제약·연예기획사 등 국내 50여개의 중견·중소업체들이 최근 일제히 화장품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한 한국 화장품이 중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자 저마다 '중국 대박'을 노리며 화장품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차별화된 기술력이나 치밀한 전략 없이 '묻지마 사업'을 시작한 업체는 머지않아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中 대박 노린다…너도 나도 화장품 사업

중국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화장품 대국(大國)이다.

시장 규모는 28조원으로, 뒤늦게 화장에 눈 뜨면서 매년 10% 이상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현재 로레알·시세이도·P&G 등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가 강세지만 한류(韓流) 바람을 타고 한국 제품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올 초 230만원이었던 주가(株價)가 '중국 특수(特需)'에 힘입어 최근 400만원을 돌파(액면분할 전)하기도 했다.

'제2의 아모레'를 노리는 회사의 면면은 다양하다. 패션업체나 제약사는 사업 연관성을 강조하며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로만손은 지난해 중국 알리바바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티몰(Tmall)'에 입점했으며 최근엔 한국에도 중국인 고객을 겨냥한 '역(逆)직구몰'까지 열었다. 김기석 대표는 "중국 시장에 진출한다고 하자 투자 회사들이 잇따라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50년 넘게 섬유 산업에 주력해온 경북 구미의 중소업체 영도벨벳은 지난달 '연비아'란 화장품 브랜드를 처음 선보였다. 패션 브랜드 동국제약 역시 최근 화장품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얼핏 화장품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회사들도 있다. 도자기 전문업체 행남자기, 건강식품 업체 천호식품, 전자상거래 업체 티켓몬스터, 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 등도 화장품 사업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이 신사업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는 것은 각 기업이 원하는 화장품을 만들어 공급해주는 ODM(제조자 개발생산) 전문기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소업체 입장에선 연구 개발과 생산 시설에 투자할 필요없이 단시간 내에 화장품을 공급받아 마케팅과 유통에 주력할 수 있다. 국내 화장품 ODM 대표 기업인 코스맥스한국콜마에 따르면 올 들어 신규 화장품 브랜드 출시를 협의 중인 기업만 50곳에 달한다.

IBK투자증권 안지영 애널리스트는 "한국 화장품의 인기 비결 중 하나는 기존 글로벌 화장품에서 볼 수 없었던 쿠션 파운데이션이나 한방 재료와 같은 아시아 맞춤형 제품, 새로운 트렌드에 발맞춰 빠르게 신제품을 생산해내는 전문 ODM기업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유행 민감한 신세대 타깃

중견·중소업체들은 중국의 떠오르는 소비층인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를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인터넷·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 능숙하고 유행에 민감한 20~30대 젊은이를 잡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알리페이' 등 전자결제 서비스가 보편화되는 것도 호재(好材)다. 중국에서 화장품의 온라인 구매 비율은 2005년 1% 수준에 불과하던 것이 2013년 35%로 급증했다. 3명 중 1명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화장품을 살 만큼 유통의 장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중국이 6월 1일부터 피부 보호용 화장품에 대한 수입 관세율을 기존 5%에서 2%로 낮춘 것도 한국 화장품 업계에는 희소식이다. 그만큼 현지 판매가격을 내릴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현지의 면세점이 늘어나고 정부가 밀수품 단속을 강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중국 시장만을 바라본 우후죽순(雨後竹筍)식 사업 진출에 대한 우려도 있다. 하나대투증권 박종대 애널리스트는 "화장품 시장은 진입 장벽이 낮은 데다 치열한 경쟁에 항상 노출돼 있어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면서 "결국 최대 수혜업체는 이들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ODM 업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