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투자, 지방 정치세력과 연관…지방 재원부담 높여야"
"민간에서 공직으로 활발하게 올 수 있어야 부정부패 줄어"
"우리나라 토지수용제도, 개인 사유재산권 과도하게 침해"

이호준 KDI 민간투자실장은 공공부문과 규제, 토지수용제도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미국 유학을 마치고 KDI를 첫 직장으로 택했다.

이호준(38) 한국개발연구원(KDI) 민간투자실장(연구위원)은 세종시 수정안이 나오기 직전인 2009년 6월 KDI에 입사했다. 세종시 수정안은 세종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하지 않고 교육과 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도시로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수정안이 부결되고 원안대로 세종시가 조성되면서 이 실장은 KDI와 함께 2013년말 세종시로 내려와야 했다.

이 실장이 근무하는 KDI는 정부세종청사에서 동남쪽으로 약 5㎞ 떨어져 있다. KDI 주변엔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세종시내나 대전 등에서 KDI로 오는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은 탓인지 KDI 주차장엔 차들이 빽빽하게 주차돼 있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96학번인 이 실장은 2004년 2월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원으로 유학을 가 2009년 5월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계약이론, 정보경제학, 법경제학, 산업조직론, 공공경제학이다. 졸업 논문(three essays on Relational Contracts and Organizations)은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경제 주체 간의 의사 결정을 분석하는 계약이론과 관련된 내용을 다뤘다.

◆ “공공투자사업, 지방 부담비율 높여야”

이 실장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정책에 적용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는 “미국에서 돌아가는 일들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이해 관계에 관심이 많았고 정책적으로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며 “정책연구는 KDI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 KDI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 실장이 관심을 가진 분야 중 하나는 공공투자사업이다. 그는 ‘공공투자사업의 정치경제학 : 대규모 공공투자사업 추진이 재선 성공률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를 통해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의 지역 유치가 관련 정치인의 선거 결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는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사업이 정치적 이해 관계에 휘둘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지방의 예산 분담수준을 현재보다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집중하고 있는 연구 주제는.

“공공부문과 예산, 지방 재정, 규제 등이다. 정부가 하는 일엔 수 많은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데 그 이해관계에 비정상적인 영역이 존재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국가 경제라는 나무를 키울 때 물 한 바가지가 나무에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뿌리까지 물이 전달돼야 하는데 실제론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공공투자사업에서 지방의 부담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예산을 짜고 집행하는 과정은 정치적 이해 관계와 밀접하다고 느꼈다. 각 지역마다 국회의원이 있고 지자체장이 있는데 2012년에 대규모 사업을 유치했을 때 선거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니 꽤 유의미한 결론이 나왔다. 유치를 많이 할수록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커졌다.

정치인들은 재선이 제일 중요한 목표인데 정치적인 의사 결정에만 맡겨 두면 잘못된 의사결정이 생길 수 있다. 정치적 의사결정을 배제하고 우리나라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100% 국비 사업은 지자체가 무조건 하려고 한다. 돈은 전체 국민이 내고 혜택은 특정 지역만 보는데 혜택을 받는 게 지역 위주라면 그 지역에서 분담하는 비율 높여야 한다.”

-지방이 공공투자사업을 유치하면 지방 부담분에 대한 재원 조달계획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가.

“페이고(pay-go·새로운 재정 지출 사업을 추진할 때 기존 사업 지출을 줄이거나 재원대책을 의무적으로 마련하도록 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방안) 원칙과 비슷한 것 같은데 SOC 사업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엮인 경우가 많다. 요즘 입법 권력이 강화되면서 엄밀한 지방의 재원 조달방안이 없어도 추진되는 사업이 있다.”

-재정이 부족한 지자체도 있다.

“지방은 재정이 부족하니 국고를 더 타가려는 경쟁이 심하다. 이는 중고등학교 때 용돈을 모아서 짜장면과 군만두를 시키면 군만두부터 먹고 (자기) 짜장면은 나중에 먹는 것과 비슷하다. 일단은 국고부터 차지하고 보자는 생각이 강하다. 이 부분을 완화하려면 누군가 군만두를 나눠주듯이 제3자가 (국고 배분을) 판단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지자체의 재정이 넉넉해지도록 체질을 키워야 한다. 직장인들은 서로 군만두를 먹겠다고 달려들지 않는다.”

이호준 실장은 “중고등학생 여러명이 짜장면과 군만두를 시키면 군만두부터 먹으려고 한다. 지자체도 일단 국고부터 타고 보자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각 지자체가 재정이 넉넉해지도록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공직 임용대상 인력 풀 늘려야 폐쇄성 줄어든다”

이 실장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기 약 6개월 전인 2013년 10월 ‘공직부패 축소를 위한 공직임용제도의 개방성 확대’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실장은 이 보고서를 통해 “공직자의 퇴직 후 재취업은 공직경험을 활용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재취업한 공직자가 국가 기관에 대한 로비 창구로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부처별 개방형 공직임용과 민간 경력채용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사회 곳곳에서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고서가 지적한 것처럼 민간 업체로 취직한 일부 퇴직 관료들은 후배 관료와 ‘일자리 공동체’를 형성해 후배 관료는 선배가 취직한 기업의 비리를 눈감아 주고 퇴직 관료는 후배의 뒷자리를 챙겨줬다.

☞관련 기사
[관료마피아]① 해피아(해양마피아),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들<2014.5.2>

-예산과 함께 규제와 관련된 인허가도 관심 있게 본다고 했는데.

“규제는 구청만 가도 힘이 어마어마하다. 정부가 갖고 있는 인허가의 힘에 대해서 보다 보니 폐쇄적인 공직 임용제도가 전체 악순환을 만든다고 생각하게 됐다. 실증적으로 주요 국가의 데이터를 보니 부정부패 문제는 공무원 임용제도의 폐쇄성과 상당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당시(2013년) 무늬만 있는 공무원 개방형 임용제도를 개선하자고 했는데 작년에 세월호 참사가 나면서 사람들이 그런 문제에 공감하게 됐다.”

-관피아 논란의 해법은 뭔가.

“퇴직 후에 재취업을 하려면 내 뒤에 올 사람과 친해야 하고, 앞 사람과도 친해야 한다. 이는 조직 자체가 폐쇄적이어야 가능하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모든 직위에 대해 민간에서 공직으로 활발하게 올 수 있어야 한다. 내 뒤에 오는 사람이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민간 기업에서 나를) 이용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

-관피아 논란으로 공직자의 재취업이 어렵고 처우도 민간보다 좋지 않은데, 민간에서 공직으로 오려는 유인이 있나.

“민간 출신을 유인하려면 관료제의 틀 안에 갇힌 승진, 임금 체계를 유연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공무원 중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꼭 능력 때문에 민간 출신을 모시자는 것은 아니고 권한 있는 자리에 누가 올지 모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권한 있는 자리가 경쟁이 되면 (이해관계로 엮이는) 고리가 약화될 것이다.”

정부가 그동안 개방형 임용제를 도입해 정부 중앙부처의 일부 국장급 등 자리를 민간에 개방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정부 각 부처는 형식상 외부에 공고하고 실제로는 해당 부처 공무원 중 승진 대상이 된 사람에게 지원하도록 해서 개방형 직위도 공무원들이 주로 차지했다. 각 부처는 ‘급여가 낮아 민간에서 유능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 실장은 능력 때문이 아니라 외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뽑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임금 체계 유연화는 현재 공무원 사회 실정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다.

-공직자의 재취업을 어렵게 하는 게 능력 있는 공직자를 썩힌다는 지적도 있다.

“어두운 부분의 고리가 약해지면 그런 분들이 활약을 할 여지가 더 생긴다. 취업 제한을 강화하자는 게 아니라 연결 고리를 먼저 풀자는 것이다. 재취업 문제는 국민적인 공감대 등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 “우리나라 토지 수용제도 너무 허술…사유재산권 침해”

이 실장이 KDI에 들어와서 가장 공부를 많이 한 분야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토지수용제도다. 그는 현행 제도에 공익성 검증 절차가 미흡해 수용권이 남용된다고 주장했다. 또 보상 기준이 미흡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토지수용제도의 문제점이 뭔가.

“사유재산권이 기본이고 필요할 때만 침해하는 게 원칙이다. 이게 잘 지켜져야 시장 경제가 돌아간다. 수용과 관련해서 가장 큰 문제는 수용 관련 법률(토지보상법)을 우회하는 법률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토지보상법 외에도 토지를 수용할 수 있는 법률이 100개가 있다. 이 법들이 다 수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토지보상 절차도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 예를 들어 갑자기 누군가 찾아와서 공시지가보다 약간 비싼 가격을 줄테니 언제까지 비워달라는 식으로 토지수용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 그런 사례가 많이 있나.

“많다. 1년이 수용 되는 게 2만여건인데, 이의 재결(裁決) 건수가 매년 늘고 있다. 특히 사업 개발자가 지자체 자체인 경우는 지자체가 개발하고 지자체가 승인하는 것이어서 수용이 쉽다.”

마침 세계경제포럼(WEF)이 141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6월1일 내놓은 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재산권 보호' 수준은 64위에 불과했다. 싱가포르(2위) 홍콩(6위) 일본(11위) 대만(16위) 등 경쟁국들에 한참 뒤처졌다. 르완다(28위) 잠비아(44위) 중국(50위) 인도네시아(59위) 등보다도 못했다.

-수용 재결 단계에서 공익성 검증을 강화하자고 했는데, 너무 막연한 것 아닌가.

“공익성의 시작은 헌법이다. 헌법 23조 3항(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을 보면 ‘공공 필요’와 ‘정당 보상’이 나오는데, 공공 필요는 경제적 효율성이 있어야 하고 (수용에 따른 개발이) 특정 개인을 위한 게 아니라 공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 한명의 일방적인 희생이 있어선 안 된다. 정당한 보상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공익성을 강조하면 아무런 개발이 안 되는 것 아닌가.

"미국에서 2005년에 '켈로(Kelo) 사건'이라는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개인의 사유재산이 상가를 짓는 것 때문에 수용 당한 것이었는데 이 사건 후에 미국의 30개주가 수용제도를 훨씬 엄격하게 바꿨다. 독일은 더 엄격하다. 개별 사업을 위해 남의 땅을 수용하려면 법률로 해야 하고 왜 개발을 해야 하는지, 보상은 어떻게 할 지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선진적인 법제 하에서는 사유 재산을 중요시하고 침해할 때는 제한적으로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시장, 도지사가 마음만 먹으면 (수용을) 할 수 있다. 수용에 반대하는 땅 주인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재 법 체계상 이의제기 자체가 불가능하다. 현재 법상으로는 사업인정 결정에 대해서 일정 기간 내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데, 이 기간이 지난 다음에 공문을 들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땅 주인은 수용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보상액만 갖고 다퉈야 한다.”

이호준 실장은 우리나라의 토지수용제도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유재산권 침해가 보다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 "법경제학 창시자 한스-베른트 쉐퍼 교수 존경"

-법경제학을 연구했는데, 법경제학이 무엇인가.

“경제주체들은 주어진 법 테두리 하에서 행동한다. 따라서 법이 어떻게 돼 있느냐에 따라 경제주체들의 이해관계, 이윤추구, 균형 등이 영향을 받는다. 법경제학은 법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법이 추구하는 균형은 어떤 것인지, 그래서 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다."

-존경하는 국내외 경제학자는.

"국내에서는 석사 과정 때 논문 지도를 해주시고 유학 준비에 많은 조언을 해주신 김선구 서울대 교수와 연구 조교를 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김인준 서울대 교수, 이창용 교수(현 IMF 아태국장)을 존경한다. 또 법경제학회 활동을 하면서 윤진수 서울대 교수와 김일중 성균관대 교수께 학술적인 면과 인격적인 면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해외에서는 유럽의 법경제학 창시자인 한스-베른트 쉐퍼(Hans-Bernd Schäfer) 교수를 존경한다. 최근 개최한 학술대회에 기조연사로 초청하면서 여러 차례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역사, 문화,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이를 법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통찰력에 깊이 감동 받았다."

-미래 경제학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쉐퍼 교수와 또 다른 법경제학계 대가인 로버트 쿠터(Robert Cooter) 교수가 공저한 ‘Solomon's Knot: How Law Can End the Poverty of Nations(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2)’를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경제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 확고한 법적 체계와 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양한 분야의 사례로 풀어서 썼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잘 쓰여져 있어서 전문적인 법률 지식이 없더라도 읽을 수 있다.”

-취미는 뭔가.

“세종시로 내려오면서 공주나, 대전, 충청도 등 인근 지역으로 나들이를 자주 간다. 서울에서는 수도권을 벗어나는 게 엄두가 안 났는데 세종시에서는 가능하다.”

-종교는.

“아내와 함께 불교다. 둘 다 (절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닌데 이 연령대 치고는 자주 가는 편이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