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티져리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건축학과 교수

“한국 학생들은 개개인이 굉장히 스타일리시하다.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그것 때문에 미국에서 온 학생들은 처음엔 굉장히 당황했다. 일부는 거기에 적응해서 함께 스타일을 가꿨고, 어떤 학생들은 나중엔 아예 신경 쓰지 않고 다니곤 했다.

또, 한국 학생들의 경우 잠재력과 재능은 충분한데도 뭘 하면 좋을지 잘 찾지 못하는 면이 있다. ‘이런저런 걸 시도해 보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주기 전엔 스스로 시도하는 걸 좀 어려워했다. 사실은 학생일 때 모험을 해보고 여러 가지 실수를 다 경험해 봐야 한다.”

“한국인은 여러 면에서 놀라운 재능을 갖췄으면서도, 자신을 어떤 한계 안에 가두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남들과 너무 달라지는 건 피하려는 느낌, 오히려 비슷해지고 싶어 하는 느낌이랄까. 옷차림부터 행동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런 인상을 준다.

반면 중국은 한 명 한 명이 정말 다르다. 인구가 13억이라면 정말 13억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산다. 비슷한 면도 있지만 차이를 더 강하게 드러낸다. 지리적으로도 참 가깝고 비슷할 것 같은 두 나라 사람들이 이토록 다른 게 흥미롭다.”

“나는 한국 학생들이 서로의 차이를 더 드러내고 조명했으면 한다. 그런 ‘차이’야말로 우리의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수업의 목표도 그것이다. 한국 학생들이 좀 더 다른 사람과 내가 어떻게 다른지, 네 관점과 내 관점은 어떤 면에서 왜 다른지 잘 드러냈으면 좋겠다.”

“내가 한국을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는 앞서 말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를 실현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머릿속 아이디어 차원에 있는 것들을 빠르게 구현할 수 있는 저력이 한국인만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 학생들의 차이, 그리고 한국과 중국 두 나라 국민의 차이를 서양의 눈 밝은 노교수는 이렇게 조목조목 가려냈다. 대가다운 통찰도 빠뜨리지 않았다.

“내가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것은 ‘뭔가 기발한 것(strange thing)’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평범한 것들 속에 가장 깊은 비밀이 담겨 있다(ordinary things contain the deepest mysteries)는 걸 알아야 한다. 일상 속의 잠재력을 끌어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욕구를 어떻게 채워줄 것인지 보라는 얘기다.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이 이런 식으로 ‘이미 있는 것’ 속에서 새로운 것을 끌어내는 작업을 한다.”

피터 티져리(Peter Tagiuri, 62) 교수. 저명한 건축가이면서 미국의 디자인 명문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에서 강의도 하는 그가 각 나라에서 체험한 것을 토대로 건네는 지혜의 말들이다.

1-5디자인랩 학생들과 토론하는 피터 티져리 교수

지난 25일 오전 서울 청담동에 있는 1-5 디자인랩(Design Lab) 스튜디오로 그를 만나러 간 길이었다. 방 안에서는 커다란 슬라이드 화면을 앞에 두고 상호 토론이 치열했다. 다들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제주도 공항 사진 슬라이드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도착할 때엔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갇히는 갑갑한 마음을, 그리고 출발할 때엔 드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설렘을 가져다주는 장소라는 양면성을 잘 담은 것 같습니다. 좋은 발표였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면만 말했는데, 지적할 게 전혀 없다는 말인가요?”

“음…. 서울에 대한 인상이 안 좋았다가 지금은 좋아졌다고 말하면서 사진이 두 번 나왔는데, 둘 다 비슷한 느낌의 사진이었어요. 차이를 보였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한 남학생이 ‘사진으로 본 나의 삶’을 발표한 직후, 거기에 대한 감평이 쏟아지는 참이었다. 방 안의 참석자는 다양했다. 청소년부터 대학생까지, 연령대도 폭이 컸다. 질문과 답변이 화살처럼 오가는 토론식 수업이었다. 학생들과 나란히 앉은 백발의 티져리 교수도 쉴새 없이 개입해 토론을 거들었다.

“지금 의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동의해요? 아니면 다른 점이 눈에 띄나요? 비평(critic)해 보세요.”

그는 간간이 점잖게, 하지만 분명한 어투로 질문을 던졌다.

“일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지 말고 약간의 거리 두기를 연습하세요.”

충고의 말을 건넬 때는 안경 너머로 옅은 하늘색의 눈동자에서 날 선 칼처럼 빛이 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큰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올해 처음으로 RISD가 이화여자대학과 함께 시작한 학점교류 시범 수업의 하나다. 세계적인 디자인 명문 RISD가 멀리 서울까지 강의실을 옮겨온 데는 티져리 교수의 역할이 컸다.

미국과 영국, 중국을 오가는 건축가이기도 한 그는 20년째 매년 한국을 찾는 자타 공인 ‘친한파’다.

그가 한국에 매료된 이유는 뭘까? 학생들까지 이끌고 와 이곳에서 수업을 시작한 이유는 뭘까. 직접 만나서 사연을 들어봤다.

-언제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됐나?

1996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올해로 꼭 20년째 한국을 찾고 있다. 20년 내내 적어도 한 해에 한 번은 꼭 왔다. 두 차례, 세 차례씩 온 적도 있었다. 정식 프로그램을 개설한 건 아니지만 한국에 올 때마다 서울대, 홍익대, 연세대, 포스텍 등 여러 학교 학생 앞에서 강연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재능있는 한국 학생을 만났고, 건축가들과 만나 작업하기도 했다.

-올해 처음으로 RISD가 한국 대학과 학점 교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왜 한국에서 수업을 할 생각을 했나?

보다시피 난 건축가다. 세계를 여행하는 걸 좋아하고, 당연히 새로운 장소를 찾아 큰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웃음) 한국 학생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건 1990년대였다. 당시 내 학생 가운데 한국인이 몇 명 있었는데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

안타깝게도 당시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별로 좋지 않았다. 대화를 제대로 나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그러다가 RISD 출신의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동생 서을호라는 학생을 만나게 됐다. 1996년 그의 초대로 한국에 왔고, 서도호 부부를 비롯한 서씨 일가와와 인연을 맺었다.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외국인 혼자서는 절대 찾아내기 어려웠을 한국의 숨은 매력을 느끼게 됐다.

그 뒤에는 내 아내 글로리아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아내도 한국에 푹 빠져서 함께 정기적으로 한국에 오게 됐다.

우리 RISD 학생들도 좀 더 문화를 다양하게 접하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오던 차였다. 서양 건축에만 주목하지 말고 한국이나 중국 같은 동양의 건축을 보면서 문화적인 다양성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학교 측을 설득한 끝에 올해부터 한국에서도 정식으로 학점을 상호 인정 받을 수 있는 교류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RISD는 해외 여러 학교와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서양 국가에 집중된 경향이 있었다. 로마에서 하는 학점 교류 프로그램도 있고.

하지만 나로서는 지금 로마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 시대에 맞지 않다고 느꼈다. 동양의 많은 문화가 세계를 주도하는 문화로 떠오르고 있는데, 우리가 하는 건 거기에 역행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동양, 특히 한국에서 학점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왔다. 이번에 기회가 닿은 이화여대와 시범 운영을 하게 됐다.

-시범 운영해 본 결과는 만족스럽나? 계속 이어갈 계획인지?

아무래도 첫 시도여서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RISD 학생 절반, 이화여대 학생 절반으로 한 반을 꾸렸는데, 서로 학제가 달라서 맞추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수업이었다. 내년 9월 학기에도 한국 대학과 학점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그 때엔 다른 학교로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두 나라 학생들을 비교해 보니 어떤가?

우스개로 이야기하자면, 한국 학생들은 개개인이 굉장히 스타일리시하더라.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웃음) 그것 때문에 미국에서 온 RISD 학생들은 처음엔 굉장히 당황했다. 일부는 거기에 적응해서 함께 스타일을 가꿨고, 어떤 학생들은 나중엔 아예 신경 쓰지 않고 다니곤 했다.(웃음)

성향 차이를 말해보자면, 한국 학생들의 경우 잠재력과 재능은 충분히 있는데도 ‘뭘 하면 좋을지’ 잘 찾지 못하는 면이 있다고 느꼈다. ‘이런저런 걸 시도해 봐’라고 구체적으로 말해주기 전엔 스스로 시도하는 걸 좀 어려워했다. 사실은 학생일 때 모험을 해보고, 여러 가지 실수를 다 경험해봐야 한다. 그래서 그런 면을 살려주고자 했다. 학기 말에는 많은 학생이 좀 더 분명한 자기만의 의도를 표현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티져리 교수와 공부하는 RISD학생들과 이화여대 학생들

RISD 특유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인 ‘비평’도 중요하게 다뤘다. 건축가가 어떤 프로젝트나 작품에 대해 말하면, 다른 학생이 이에 대한 비평을 나누는 수업이다. 이건 예술가로서 작업할 때 꼭 거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비평이란 어떤 사람을 인격적으로 비난하는 게 아니다. 작품에 집중해서, 어떻게 하면 작가의 관점과 독창성이 더 잘 드러날 수 있을지 서로 생각하고 훈련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학기는 스튜디오에만 온종일 묶여 있지 않았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는 일주일에 두 차례만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스튜디오에서 수업했다. 다른 날은 주로 바깥에서 여러 다른 활동을 했다.

사실 RISD 학생들은 온종일 스튜디오에서 사는 삶에 더 익숙한 학생들이다. 스튜디오 말고는 아무 데도 안 가는 친구들이니 이번 학기 수업이 아마 새로운 경험이었을 거다.(웃음) 이번 학기엔 학생들과 함께 중국을 여행하기도 했다. 스튜디오 밖에서 더 풍성한 문화적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에 같이 여행하는 동안 한국 학생들이 보여준 훌륭한 여행자다운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야외 프로젝트 중인 티져리 교수와 학생들

-훌륭한 여행자다운 모습이라니?

한국 학생들은 특히 서로 다른 문화에서 어떤 점이 변형돼 들어왔는지 알아가는 데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서로 비교하면서 많은 걸 얻어냈다. 가령 한국에서도 에클레어(eclair)라는 빵을 팔지 않나? 원래는 프랑스 빵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파는 에클레어 빵을 먹어보면, 그 속을 채운 크림은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유한 맛이 난다. 그게 바로 복제가 아닌 ‘변형’이며, 한국 사회 안에 자리 잡은 하나의 문화로 볼 수 있다.

그런 것처럼 한국 학생들은 중국 문화의 어떤 것들이 한국 문화로 변형돼 들어왔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해석해 냈다. 함께 중국에 머무르는 동안 다양한 문화를 경험했는데, 같은 상황에서 두 나라 사람이 어떤 식으로 다르게 생각하는지 비교해보곤 했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는 어떤 차이를 느끼나?

한국인은 여러 면에서 놀라운 재능을 갖췄으면서도, 자신을 어떤 한계 안에 가두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남들과 너무 달라지는 건 피하려는 느낌, 오히려 비슷해지고 싶어 하는 느낌이랄까. 옷차림부터 행동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런 인상을 준다.

반면 중국은 한 명 한 명이 정말 다르다. 인구가 13억이라면 정말 13억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산다. 비슷한 면모도 있지만, 서로의 차이를 더 강하게 드러낸다. 지리적으로도 참 가깝고 비슷할 것 같은 두 나라 사람들이 이토록 다른 게 흥미롭다.

내가 특별히 한국에서 머무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앞에서 말한 그런 (비슷해지려는) 특성에도 아이디어를 실현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이 이룬 빠른 경제성장을 대단히 훌륭하다고 평가한다. 2600만명의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이란 도시에서 끊임없이 혁신이 일어나고 개발되는 것, 깔끔하고 편리한 지하철 시설만 봐도 한국인의 뛰어난 능력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점이 늘 놀랍다.

머릿속 아이디어 차원에 있는 것들을 빠르게 구현할 수 있는 저력이 한국인만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환경이 RISD 학생들에게도 좋은 무대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다른 문화 속에서, 자신만의 일을 이뤄낼 수 있는지 시험할 수 있는 좋은 시험대가 될 거다.

-한국 학생들에게 뭘 더 주문하고 싶은가?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재능과 개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그 차이를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 아까 수업 때 한 친구가 자신의 삶에 대해 발표하면서 ‘평범하다(ordinary)’는 말을 반복해서 강조하더라.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해보면 그도 전혀 평범하지 않다. 자신만의 특별함이 있다. 나는 한국 학생들이 서로의 차이를 더 드러내고 조명했으면 한다. 그런 ‘차이’야말로 우리의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조명하는 게 즐겁고 재미있다.

내가 하는 수업도 그런 목적을 갖고 있다. ‘차이점’이야말로 찬양할 만한, 그리고 찬양받을 만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어쩐지 그 차이를 드러내는 데에 있어 소극적이다. 한국 학생들이 좀 더 다른 사람과 내가 어떻게 다른지, 네 관점과 내 관점은 어떤 면에서 왜 다른지 잘 드러냈으면 좋겠다.

티져리 교수는 지난 20일 과천시민회관에서 열린 위기청소년을 위한 토크콘서트 ‘내일의 아이들’ 연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번 학기 중에 소년원 출신 청소년의 갱생 프로그램에도 학생들을 참여시켰다. 직접 토크 콘서트 연사로도 나선 걸로 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RISD 졸업생이 구성원으로 참여해 적극적으로 재능기부(pro bono) 활동을 하고 있는 1-5디자인랩의 제안에 크게 감명 받아서 참여하게 됐다.

사실 해외 명문 대학은 다양한 전공학과에서 각자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한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이런 식의 재능기부 활동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도 가진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강조하곤 한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이런 활동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1-5디자인랩의 적극적인 활동이 인상 깊었다. 1-5디자인랩은 소년원 출신 위기청소년의 새출발을 위한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몽골 청소년을 위한 무상 디자인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재능 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점에 감명받아 나도 1-5디자인랩 자문 위원으로 합류해 이런 재능기부 활동이 더 확대되도록 힘을 보태기로 했다.

특별히 이번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소년원생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대단히 강하다는 점이다.

미국에도 한국보다 훨씬 큰 규모의 소년원이 있고 소년원생도 많다. 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미국 소년원에는 사회 복귀 의지가 없는 원생이 훨씬 많다. 자포자기하고 소년원을 반복해서 드나드는 사람이 많다.

반면에 한국 소년원의 원생들은 죗값을 치른 뒤 사회에 돌아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대단히 강했다. 그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

-건축가로서 당신이 추구하는 건축은 어떤 것인가?

나는 늘 이렇게 강조한다. “모두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거나 세상에 없던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건축가의 일 중에는 모든 것을 새로 창조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있는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도 우리 일이다. 일상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 숨은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내느냐가 자신만의 독창성이다. 그런 독창성을 어떻게 발휘하느냐가 가장 큰 과제다. 무심하게 볼 땐 보이지 않던, 숨어 있던 요소를 끌어내고, 그런 요소를 어떤 식으로 연결하느냐가 독창성을 드러낸다.

내가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것은 ‘뭔가 기발한 것(strange thing)’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평범한 것들 속에 가장 깊은 비밀이 담겨 있다(ordinary things contain the deepest mysteries)는 걸 알아야 한다. 일상 속의 잠재력을 끌어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욕구를 어떻게 채워줄 것인지 보라는 얘기다. 세계 최고의 건축가들이 이런 식으로 ‘이미 있는 것’ 속에서 새로운 것을 끌어내는 작업을 한다.

-한국에서는 어디에 머물고 있나? 그 집은 어떤가?

세종로 쪽의 한옥에 묵고 있다. 시설이 아주 잘 돼 있는 건 아니지만, 현대식 건물과는 다른 한옥다운 특성이 잘 살아 있어서 좋다. 나는 온돌 시설이 된 방바닥을 특히 좋아한다. 한국에 오면 침대 대신 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고 눕곤 한다. 처음엔 물론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내가 바닥에 누워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편하게 느낀다.(웃음)

-한국 건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대단히 훌륭한 건축가가 많다. 이로재도 아주 훌륭하고, 압구정동이나 강남 쪽에도 소규모 오피스 빌딩 가운데 훌륭하고 재미있는 건물이 많다. 앞으로는 서울에도 청계천처럼 도심 속에 공존하는 자연의 모습이 더 많이 나타나게 될 것 같다. 이런 시설이 지속가능한,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테지만 말이다.

특히 한강을 주목한다. 지금이야 양쪽으로 대로가 펼쳐져 있지만 물의 잠재력이란 건 엄청나다. 미래에는 건축이 그 물 위에 구현될 수도 있다. 물의 힘은 공기보다 훨씬 강력해서 더 많은 무게를 더 안전하게 버틸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도시를 확장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한국에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건축 스타일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당신은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과 그 자체로 독특한 건물 중 어떤 쪽을 좋아하나?

독특한 건물이라면 UFO처럼 생긴 걸 말하나? 내가 참여한 팀이 최근 중국 닝보(寧波) 인저우구의 문화활동센터 공모전에서 우승했다. 그런데 공모전에 나온 작품 대부분이 주변 경관과 동떨어진 UFO 같았다. (웃음) 우리 팀 프로젝트만 원래 그 공간에 있었던 것처럼 주변과 어울리는 건물이었다.

하지만 사실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건물 겉모습의 조화가 아니다. 그 건물의 기능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가 중요하다. 겉모습이 한옥처럼 생겼다고 해서, 기왓장을 올렸다고 해서 한옥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건축물을 자연의 연장선으로 본다. 물리적인 세계가 추상적인 것들, 아름다움이나 여러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앉은 이 방에도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있지 않나? 이 바람도 건축 일부다. 왜냐하면, 건축가가 이곳에 창문을 만들었고, 그 창문을 열면 자연과 연결돼 바람을 받게 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겉모습 차원에서 자연과 어떻게 조화되느냐보다는 기능적인 면에서 얼마나 ‘자연스러운’ 건물을 만드느냐를 중시한다.

-건축계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최근 중국에서는 3D프린팅 주택 회사가 등장했다. 이런 급격한 기술 발달과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굉장히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본다. 사실 컴퓨터 기술을 통한 건축은 계속해서 시도해 온 일이다. 한국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만 해도 3D 프린팅은 아니지만, 첨단 컴퓨터 기술을 통해 패널을 커팅해 만들어진 건물 아닌가?

이런 기술들은 여러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준다. 원래는 벽돌업체에서 일일이 떼어 와야 했던 벽돌이나, 목재, 철근 같은 자재를 이제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직접 뽑을 수 있게 되는 것 아닌가? 건축가로서는 활용할 수 있는 재료의 폭이 넓어질 거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건축업계에서는 이런 새로운 기술과 도구가 기존 것들을 완전히 대체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새로운 자재가 나오면 기존 자재는 다른 관점에서 다시 쓰이고, 또 다른 관점에서 조명이 되면서 다른 방법으로 쓰이곤 한다.

따라서 이런 기술 혁명은 대단히 재미있는 현상이고 그만큼 다양성을 확보해 줄 것으로 보지만, 그 자체가 모든 건축 기자재를 대체할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 피터 티져리 교수는

행사장에서 사인하는 피터 티져리 교수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약해 온 건축가. 다트머스대학, 하버드 디자인 스쿨, 로마 아카데미아 디 벨리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등 유럽 여러 건축학교의 객원교수를 지냈다. 1987년부터 현재까지 RISD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한다. 항저우 CAA 객원교수와 에든버러 대학 외부 심사관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1년 런던 ‘Brick Award’ 등 여러 건축상을 받았고, 영국, 중국, 프랑스, 일본, 북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에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최근엔 도시 계획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