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팀장을 맡고있다 보니 국제관계에 대한 세미나 등 각종 학술행사 취재 요청 메일을 종종 받습니다. 그런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중국에 관한 것입니다.

2~3년 전만 해도 중국에 대한 학술행사의 초점은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지에 맞춰졌지만, 이제는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로 받아들이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지난해 말 물가수준을 감안한 경제규모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24일 이 같은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면서 미국이 한 세기 넘게 유지해온 세계 최고 경제대국의 지위를 중국에 넘겨줬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물론 중국이 앞으로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이 되려면 투명하지 못한 기업 지배구조와 도농간 경제 격차 등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지만, 그동안 중국이 보여준 장점 역시 평가하고,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과 자웅을 겨룰 ‘G2’ 국가 중 하나로까지 부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장기적 안목에 따른 투자와 '정경분리(政經分離)' 원칙에 따른 실리외교가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신 아프리카에 중국은 이미 오래전 진출해 자원외교로 현지에서 미국을 능가하는 입지를 다졌습니다.

중국은 2000년대 초부터 아프리카 국가들과 정상 외교를 통해 아프리카산 석유·가스 수입의 길을 열었습니다. 2004년에는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이 가봉·알제리·이집트 등을 순방하는 동안 중국 국영석유집단공사(CNPC)는 세 나라와 장기 원유 도입계약을 맺고 유전 탐사계약을 체결하는 등 일찌감치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애정공세는 최근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월에는 아프리카 수단의 대통령궁을 중국이 자비를 들여 대통령궁을 지어준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물론인권 침해와 대량 학살 등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의 처소를 지어준 것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지만 꾸준함은 높이 살만 합니다.

국제관계 흐름의 변화에 따라 기민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며 실리를 좆는 모습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중국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의 경제제재로 러시아가 어려움에 처하자 발빠르게 협력에 나섰습니다. 이에 따라 1969년 러시아와 국경 문제로 무력 충돌을 빚으며 전쟁 직전까지 갔던 두 나라는 우주탐사와 국방 분야까지 교류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중국을 제치고 최고의 경제성장을 이룰 것으로 보이는 인도와, 그와 앙숙인 파키스탄을 실리외교를 앞세워 함께 끌어안는 모습도 늘 실리를 이야기 하면서도 명분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한민국 기자의 눈에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달 20일 파키스탄을 방문해 50조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는 등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고, 불과 20여일 뒤인 이달 15일에는 중국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만나 인도 내 고속철 건설사업 등 총 24개 분야에서 100억달러 규모의 투자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장기적인 안목과 유연한 대응은 중국 경제의 저력을 보여주는 덕목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외교의 취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부분이기도 합니다. 어느덧 초강대국의 턱밑까지 성장한 중국에게 배울 것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