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천체물리학에 대해 텔레비전으로, 그것도 아침 황금시간에 정규방송을 끊고 무려 40분이나 생방송한 나라가 있을까? 이 전무후무할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이제 세계에서 블랙홀을 제일 잘 아는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이다!

SBS는 5월 20일부터 21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깨어있는 호기심’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서울디지털포럼 2015’ 행사를 개최했다. 첫 주제발표를 영화 ‘인터스텔라’를 자문한 물리학자 킵 손(Kip Thorne) 교수가 20분 동안 하고, 이어서 송유근 군과 20분 대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부분이 모두 생방송됐는데 넥타이를 맨 유근이 모습을 실제로 본 것은 나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방송된 대담 장면.

킵은 나에게도 스승 같은 분이다. 텍사스 대학(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 유학하던 나는 1987년 초 논문을 쓰다가 궁금한 부분을 그에게 편지를 보내 물었다. 한 달이 조금 지나자 아주 친절하고도 자세한 답장이 그로부터 왔다. 그 편지 덕분에 나는 방정식들의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고 그 해 12월 박사학위도 받을 수 있었다.

학문적으로 ‘손자’가 되는 유근이도 이번 기회에 ‘할아버지’ 킵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킵은 우주를 쉽게 설명하는데 천재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킵의 자상하고 완벽한 자문이 처음부터 끝까지 돋보였다. 그의 온화한 성품이 인화단결을 이뤄내 불가능을 가능케 했으리라 나는 확신한다. 유근이에 대해서도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교수인 부인 캐롤리(Carolee)도 유머감각이 대단했다. 킵은 1973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대성이론 교과서 ‘중력(Gravitation)’의 공저자다. 책이 전화번호부처럼 커서 보다가 졸리면 베고 자기 안성맞춤이라고 내가 말했더니 캐롤리는 문을 열어둘 때 받쳐놓으면 좋다고 한 술 더 떴다.

Kip과 부인 Carolee.

그만큼 두꺼운 교과서가 킵과 로저 블랜포드(Roger Blandford)에 의해 집필되고 있다는 반가운 뉴스도 들었다. 로저는 '블랜포드-즈나이옉 과정(Blandford-Znajek process)'으로 유명한 영국 케임브리지 출신 천체물리학자다. 이 과정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데 킵은 1982년 논문에서 간단한 전자회로로 아주 쉽게 설명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조회수 40만을 돌파한 내 네이버캐스트 '인터스텔라' 관련 기고문을 참조하기 바란다(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0&contents_id=75191&leafId=20).

나는 킵에게 전통에 빛나는 우리 천문학에 대해 소개했다. 만원 지폐를 꺼내서 세종대왕, 천상열차분야지도, 일월오봉도, 보현산천문대 광학망원경을 보여주면서 우리 민족이 하늘과 우주를 숭앙한다는 사실을 설명했다(7번 칼럼 참조). 킵은 깊은 관심을 보였고 우리나라에서의 ‘인터스텔라’ 대박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됐다. 특히 우리나라가 BC 2467년에 관측한 오성결집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42번 칼럼 참조).

바쁜 포럼 중 시간을 내 ‘만원 지폐 관광’을 갔다. 경복궁에 가서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일월오봉도를 보고 광화문의 세종대왕을 만나러 간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내 블로그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킵 덕분에 우리는 세계에서 블랙홀을 제일 잘 아는 국민이 됐고 킵도 우리 ‘우주문화’를 많이 이해하고 돌아가 뿌듯하기 짝이 없다.

Kip 부부에게 한글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필자.
세종대왕상 지하의 일월오봉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