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이 26일 흡수합병한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회사다.

삼성물산은 1938년 삼성의 창업주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친인 고 이병철 회장이 대구에서 만든 무역회사 삼성상회로 첫 걸음을 뗐다. 삼성상회는 대구와 포항에서 각각 가져온 청과물과 건어물을 중국과 만주에 수출했고, 무역업 외에 국수 제조도 했다.

삼성상회는 1948년 지금의 사명과 유사한 ‘삼성물산공사’로 이름을 바꿨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해 피난지인 부산에서 사업을 이어갔다. 1953년 남·북 휴전협정에 따라 회사를 서울로 이전해 본격적으로 해외 무역을 시작했다. 삼성물산은 당시 최대 현안이었던 전후 민생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홍콩과 마카오,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들과의 교역을 통해 생필품 수입과 판매에 집중했다.

1960년대에는 국내 산업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데 필요한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75년 5월 정부로부터 ‘종합무역상사 1호’로 지정되고 그해 수출실적 2억달러를 넘어섰다. 수출액은 1976년 3억달러, 1977년에는 5억달러를 돌파했다. 1980년대 이 비중은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의 10%를 차지할 정도였다.

삼성물산은 1995년 12월 삼성건설과 합병해 현재와 같은 상사와 건설 부문 사업 체제를 갖춘다. 당시 삼성물산은 “양 사업 부문 간 시너지 극대화를 위한 조치”라고 이유를 밝혔지만, 삼성물산 상사 부문의 해외 네트워크와 자금력이 부진한 건설 부문을 되살리기 위해서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삼성물산의 상사부문은 위축된 반면 건설부문은 외환위기 이후 국내 건설경기 활황을 맞아 승승장구했다. 2000년 ‘래미안’ 브랜드를 단 아파트를 공급하면서 당시 아파트 분야에서는 생소했던 고객관리와 사후관리 시스템을 내놓아 후발주자에서 업계 최고 자리까지 뛰어올랐다.

해외 시공 실적도 충실히 쌓아갔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452m), 대만 최고층 건물 ‘타이베이 101’(509m)을 시공하고, 2010년 현존 세계 최고층 건축물인 ‘부르즈 칼리파’(828m)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지으면서 초고층 빌딩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이밖에 2011년 사우디아라비아 쿠라야 발전소, 2013년 호주 로이힐 광산개발 사업(2013년) 등 대형 프로젝트를 잇따라 수주했다. 이런 해외 공사 실적을 바탕으로 삼성물산은 지난해 현대건설을 누르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토목건축공사업 부문 시공능력평가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올 들어 발표한 실적이 부진하면서 삼성물산은 기로에 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삼성물산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488억원으로, 1년 전보다 57.7% 줄었고, 매출액 역시 6조1076억원으로 5.6% 감소했다. 해외 수주가 신통치 않은 상황에서 1년 6개월 간 신규 주택 사업 수주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이 래미안 브랜드를 포기하고 공공사업과 주택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