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시행되는 정년 연장(58세→60세)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날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꺼려 '청년 고용 절벽(일자리 급감)'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노사 합의가 필요해 아직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공기업 등 공공기관을 앞장세워 민간 기업으로 임금피크제를 확산시키려는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에 시동이 걸린 상태다. 하반기 중에 모든 공공기관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임금피크제가 정년 연장에 따른 청년 고용 절벽을 막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정년연장은 내년에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에 대해 시행되고, 2017년부터는 전 사업장과 공무원으로 확대된다. 임금피크제란 특정 나이에 도달하는 시점에서 임금을 줄이는 대신 정년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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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도 정년 연장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을 덜고, 신규 채용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은행권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국민은행이 임금피크제에 희망퇴직제라는 카드를 추가해서 청년 고용 절벽을 막고, 신규 채용을 늘리기 위해 나서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2일 "청년 실업 급증을 막기 위해서는 임금피크제와 희망퇴직 실시를 통한 경비(인건비) 절감으로 신규 고용을 늘리는 것이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임금피크제가 전면적으로 도입되지 않을 경우 현재 10%대인 청년(15~29세) 실업률은 단숨에 16%대로 뛴다. 일자리를 원하지만 취업을 하지 못하는 청년이 45만명(지난 4월 기준)에서 73만명으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금융권, 임금피크제+희망퇴직으로 신규 채용 확대

한국은행은 오는 7월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대상자는 57세부터 3년에 걸쳐 피크 임금(56세 기준)의 240%를 받는다. 한은은 신규 고용을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 채용을 확대할 방침이다. 임금피크제 대상자 60명을 정원(定員)에서 제외해 이들의 숫자만큼 신규 채용을 하고, 올해 58세로 정년 퇴직하는 65명의 빈자리를 합쳐 최대 125명을 채용한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올해 125명을 전부 채용하지 않고, 100명 정도만 신규 채용한 뒤에 나머지 25명은 내년과 후년에 나눠서 채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임금피크제를 일부 도입해온 은행권은 저금리로 인한 수익성 악화와 정년 연장이 맞물린 상황에서 최선의 임금피크제 모델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다. 가장 발 빠르게 제도 개선에 나선 은행은 2008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던 KB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은 임금피크제에 희망퇴직제 정례화를 덧붙여 앞으로 청년층 신규 채용을 예년보다 더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은행은 이런 방식으로 올해 채용 규모를 지난해보다 40% 늘려 110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겸 국민은행장은 "노사가 합의해서 KB 나름의 세대 간 상생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주열 총재는 국민은행 방식에 대해 "잘 마무리되면 (정년 연장에 대응하는) 좋은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직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은 은행들은 도입 방식과 시점 등을 두고 노사 간 협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4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임금피크제 없이 '58세 정년'을 고수하고 있는 신한은행은 최근 노사 간 협상을 시작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정년 연장이 되면 임금피크제 없이는 고용을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농협·씨티·SC은행은 임금피크제와 관련된 노사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기업·산업·수출입은행 등 지난 2005년부터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책 은행들은 기존 방식보다 더 나은 모델을 찾으려고 고민 중이다.

정부, 주요 공기업 연내 임금피크제 도입 유도

정부는 모든 공공기관에 대해 하반기 중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한 상태다. 공공기관이 선도해 민간으로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아직까지는 공공기관 316곳 중 56곳(17%)이 도입한 데 불과하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이 조만간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금피크제 도입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정부는 공공기관들이 기존에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대상자들을 '관리역' 등의 이름으로 일선에서 제외하는 방식이라 비효율적이었다고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임금피크제가 단순히 임금 삭감의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