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9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신임임원 만찬에 참석한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올해 1분기는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에게 시련의 계절이다. 소비위축이 몇년째 이어지며 제일모직은 연결기준으로 올 1분기 매출 1조2728억원, 영업이익 60억원을 기록했다. 2014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0.3% 늘어났지만 영업이익은 60.6% 줄었다.

제일모직 실적이 부진한 이유는 제일모직 매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패션사업부문이 실적이 저조해서다. 제일모직의 사업부문별 매출비중은 패션 36%, 급식식자재유통 31%, 건설 25%, 레저 8% 등이다.

이 사장은 사장 취임 이후 빈폴아웃도어와 에잇세컨즈(국내형 SPA) 등 새로운 브랜드를 잇따라 출시했다. 그러나 유니클로나 자라, 스파오 등과 경쟁이 심화한 탓에 판매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또 남성복시장 역시 경기불황으로 저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이 사장이 어떻게 돌파할 지 관심이 쏠린다. 이 사장은 외부에서는 패션에 전문성을 가진 경영인으로 알려졌다. 반면 내부적으로는 제일기획을 글로벌마케팅 솔루션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등 광고미디어 분야 역량도 상당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오빠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언니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에 비해서 삼성그룹 승계과정에서 덜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빠인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입사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경영 능력을 검증 받았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00년 인터넷 벤처 사업에 뛰어들면서 ‘e삼성’, ‘e삼성인터내셔널’, ‘가치네트’ 등 14개 회사를 연이어 세웠다. 그러나 몇 해 지나지 않아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사업을 접으면서 한동안 경영 능력을 의심 받았다. 이후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입사해 2012년 부회장 자리에 오르기전까지 TV와 LCD 부문에서 크고 작은 실적을 내면서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일정 부분 해소시켰다.

이부진 사장도 2001년 호텔신라에 입사했던 당시에는 세간의 시선이 좋지 못했다. 아동복지학 전공에다 경력도 삼성복지재단 등에서만 쌓아 호텔업과 관련된 경력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이부진 사장은 입사 10년뒤 2011년 호텔 경영을 책임진 이후로 면세점 사업 확장 등 성과를 하나 둘 쌓아가더니, 재임 후 호텔신라의 몸집을 시가총액 기준으로 네 배나 키웠다. 매출도 이 사장이 취임한 2010년 1조4524억원에서 2014년 2조9089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렸다. 이 과정에서 신라호텔 리모델링, 면세사업 해외 진출, 미국 면세점 기업인 디패스 인수 등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이 사장도 제일모직 사장 취임 이후 경영 혁신 작업을 통해 생산 체계 변경, 재고 물량 감소 등의 경영 수완을 발휘 했다. 또 빈폴과 에잇세컨드 등 다양한 패션 브랜드를 키우고, 해외 명품 브랜드를 도입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보는 시각은 이 같은 성과가 오빠와 언니가 보여준 경영 성과보다는 덜 알려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나 이부진 사장에 비해 외부에 노출이 덜 되서 그렇지, 이서현 사장이 제일모직 패션을 맡으면서 전후가 확연히 구분된다”면서 “과거에는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 많이 파는 것에 주력했지만, 이 사장 부임 이후에는 글로벌 명품들과 격차를 직접 보고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을 고민하는 등 기업 체질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서현 사장도 삼성그룹 승계과정에 있어서 핵심인 제일모직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일정 정도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현재 제일모직은 삼성그룹 3세가 모두 모여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지분 23.23%를 가지고 있는 대주주이며, 이부진 사장은 여전히 경영전략담당 사장을, 이서현 사장은 패션담당 사장을 맡고 있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은 제일모직 지분 7.74%씩 보유 중이다.

그래픽=박종규

재계에서는 장남인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이 전자·금융계열을, 장녀 이부진 사장이 유통·서비스계열을, 그리고 차녀 이 사장이 패션·광고계열을 나눠 맡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모직의 대주주 보호예수 기간이 6월 17일 해제된다. 제일모직을 시작으로 삼성그룹 지배구조가 변동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은 2014년 삼성SDS와 제일모직 등을 상장하면서 지배구조의 큰 틀을 정리했다. 제일모직 상장으로 30개가 넘던 순환출자 고리가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전기·삼성SDI→제일모직 등 10개 정도로 단순화됐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보호예수 기간이 해제되면 삼성물산(1.37%)과 삼성SDI(3.7%), 삼성전기(3.7%)가 보유한 제일모직 지분을 정리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남은 순환출자 고리 10개 중 9개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이후 제일모직을 정점으로 해 삼성생명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에 따라 제일모직 패션사업부문을 담당하는 이서현 사장이 향후 제일모직을 어떻게 이어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서현 사장은 패션부문의 핵심 육성사업으로 패스트패션(에잇세컨즈)을 꼽고, 과감한 공급망 투자 등 차별화된 사업역량을 확보하고 해외시장 개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글로벌 톱 브랜드’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또 스포츠·아웃도어 등 신규 사업을 크게 강화하겠다는 전략도 갖고 있다.

다만 이서현 사장이 패션과 광고를 겸직하는 상황에서 패션과 광고미디어 양쪽을 아우르는 경영능력을 보여야 삼성그룹의 3세승계 과정에서 한 축으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서현 사장은 패션쪽으로만 특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광고미디어쪽 역량은 저평가된 면이 있다”며 “그래서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보다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